이번에는 창의성의 발명Die Erfindung der Kreativität이라는 책에 관한 기사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 책은 나온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아 초판이 완판되었는데요, 저자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 사회학자라는 것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문화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레크비츠Andreas Reckwitz는 그의 책을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오늘날 창의적이 되는 것, 개성을 가지고, 자아실현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 이는 없습니다. (관련 글 : "창조적이 되라, 너를 새로 발견하라!" / 자본주의 속 예술이 갈 길) 자본주의 아래, 개인뿐 아니라 이제는 많은 기업까지 본보기로 삼는 이런 성향은 실은 60년대를 전후로 한 저항 문화가 추구하던 바와 신기하게도 일치합니다. 어떻게 저항 문화의 지향점이 그가 비판하던 자본주의의 신조가 된 걸까요? 예술가가 자본주의 시대에 모두의 본보기가 되었다는 점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여 주류에 저항하는데도 말이지요. 레크비츠는 이런 이유로 예술가가 최고의 자본주의자라 말합니다. 오늘날의 사업가들은 예술가가 되고자 합니다. 물론, 레크비츠의 이런 고찰은 예술계를 자극했고 주요한 미술 매체에서는 이에 대한 많은 논쟁과 토론이 있었습니다. 제 주변의 친구들 역시 이 문제를 다룬 전시를 "창의성의 해체Kreativität abrüsten"라는 제목 아래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 첨부)
진보 성향 주간 신문 디 차이트Die Zeit 2월 18일 자에 인문, 철학부 편집장이자, 철학자 하버마스의 제자인 토마스 아스허이어Thomas Assheuer가 쓴 기사를 소개합니다.
글: 토마스 아스허이어Thomas Assheuer / 번역 : 정소현
안드레아스 레크비츠의 인상적인 연구: "창조성의 발명Die Erfindung der Kreativität"에 대해
사회 비평을 하기에 좋은 시대가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 비평을 하면 마치 술에 물을 타 술자리의 흥을 깨는 사람, 전후 독일 시대에서 온, 한물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 이런 시대는 지나갔다. 서점에 가 조금만 둘러보면 비평적인 이론서들에 바로 둘러싸이게 된다.
좋은 예로 프랑크푸르트(오더)에서 교단에 서는 문화·사회학자 안드레아스 레크비츠Andreas Reckwitz를 들 수 있다. 몇 년 전 그는 하이브리드 주체Das hybride Subjekt에 대해 자극적이고 꽤 특이한 한 책을 썼다. 우리는 이미 이때부터 레크비츠의 글쓰기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레크비츠는 "시스템 광신도"라고 무시당하던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이론 구조로부터 비평적인 힘을 끌어내고 다른 사유 모델과 연결했다. 또한, 레크비츠는 유토피아적인 안전망이나 메타포의 도움 없이 작업한다. 그가 시대에 내리는 진단, 그리고 이를 통해 생겨난 재빠르고 차가운 톤의 글쓰기는 다른 비평문들과 달리 뚜렷한 결론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그는 더 나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는 세계가 아주 다른 모습을 할 수 있었음에도 결국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된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며 놀라워할 뿐이다.
새 책에서 레크비츠는 "창의성"의 성공에 대해 놀라워한다. 자세히 말해, 창의성의 성공이 얼마나 빠르게 사회의 이상향이, "요구 사양"이 되었는지에 그는 매료되었다. 안내 창구 직원, 영화관 검표원, 감자튀김 판매원 – 이들 모두는 창의적이어야 한다. 이에 성공하지 못할 때, 이는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고들 한다. 창의성은 "후기 모더니즘"의 이상향, 비밀스러운 성공의 재료 그리고 자본주의의 기괴한 욕망이다. 레크비츠의 다소 가파른 개념 설정에 따르면, 미학적 창의성은 주체와 시스템을 연결하기에 오늘날의 사회화 방식이라 한다.
요하네스 벤줄라Johannes Bendzulla, 무제, 갤러리 BRD, 쾨피스 뢰플러Korpys/Löffler, 토마스 데만드Thomas Demand, 슈테펜 칠리히Steffen Zillig가 함께 하는 전시 창의성 해체Kreativität abrüsten에 전시되는 작품 중 하나로 사진 시리즈를 모은 사진집입니다. 책은 앞과 뒤 양쪽에서 시작하며 각각 예술가와 기업가의 사진을 수집, 수정하였습니다.
그의 연구 제목은 창의성의 발명이다. 이 온순해 보이는 제목은 그 자신의 실체를 완전히 위장한다. 레크비츠는 도입부에서부터 시민 문화의 기둥을 무너뜨린다. 그는 예술이 "더는 사회에서 주변부를 맴도는 외적 문화가 아닌", 사회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와해된 자본주의" 속에서 예술과 자본의 묵은 대립은 사라진 듯하다 – 그리고 미학적-창조적인 성향은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미학적"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경계를 없애고" 이제는 모든 곳에서 관찰된다. 병따개, 휴대전화 혹은 스타일리쉬한 도시를 달리는 오프로드 차량이든 간에,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것들은 더는 표준화된 상품이 아니다. 이는 소비자의 감성이 투사되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에 창조적으로 들여오게 되는, 미학적으로 혁신적인, 창의적으로 발명한 상품이다. 과거에 거의 종교의 자리에 올라있던 예술이 감춰진 진실을 작품에 드러내려 했다면, 오늘날 자본주의적 창조 미학은 의미 없는 "격정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오늘날 미학은 작품이 아닌 현상을 만들어낸다 – 그들은 매력적인 것을 더욱더 매력적으로 만들어내고, 반복되는 자극, 흡입력과 감성을 생산해 낸다. 이런 넘치는 발명들은 레크비츠에게 "태생적으로" 감정이 없는 자본주의가 그렇게나 많은 매력을 펼쳐 보이는 이유를 알려준다: 자본주의는 더는 의무가 아니며, 더는 막스 베버Max Weber 형식주의의 노예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감각적으로-의욕에 찬 비전이다. 그 누구든 언제든지 격정-세계에 입장해 창조적으로 참여하면 된다. "차갑게 식은 모더니즘 시스템의 바다에서 예술은 뜨거운 열대의 군도群島이다."
사회 전체가 미학적으로 달궈진다면, 혹은 레크비츠가 쓰고 있듯이 "창조적 전략Kreativitätsdispositiv"이 승리했을 때, 예술가의 역할은 변화한다. 시민 문화에서 그는 천재적인 별종이었다; 오늘날 예술가는 창조의 전형을 사회의 중심에 내리 꽂고 "자기 자신의 육체에" 지당한, 유명세를 노리는 유명한 스타다. 이와 동시에 그는 "특별한 존재로의 아우라"를 잃긴 하지만 매력적인 이상적-자아Ideal-Ich에 승선한다: 스타 예술가는 피곤에 지친 시민에게 어떻게 자신을 스스로 창조적으로 마케팅 해 사회 복지 구조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남는지를 보여준다.
이상하다: 우리가 아는 전설은 현대 미술이 반 자본주의에 깊이 물들었다고 하지 않던가? 레크비츠는 맞는 말이다, 라고 쓴다. 그러나 바로 그 자본주의 비판적이라는 반문화가 과거 예술과 자본의 장미 전쟁을 끝낼 만반의 준비를 도맡았다고 한다. 아방가르드 운동은 예술을 그의 시민-종교적인 배경으로부터 오려내, 그를 – l’art pour l’art –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운 미학으로 만들었다. 쓰디쓴 아이러니: 이 덕에 이제 "순수하게" 그리고 자유로워진 미학적 에너지는 낯선 목적으로 쓰이기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광고, 패션, 디자인 분야가 그랬다. 레크비츠는 60년대의 반문화 성향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는 계기를 본다. 이는 반문화로 부터 떨어져 나와 미학적 자본주의의 모범적 최고 회사가 된 창조적 산업인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당장에라도 미학적으로 만들어 낼 준비"를 위한 전환점이다.
레크비츠가 창조적 사회를 보이지 않는 폭정暴政으로, 새로운 지배자로 묘사하려는 것은 아니다. 창의성은 단지 내면 가장 깊이 있는 소망을, 진정한 욕망을 "자극한다"는 이유 하나로 후기 모더니즘의 히트가 되었다: 사람들은 창의적이 되고 싶어하고 자신의 삶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고자 한다. 예전 사람들은 이런 이들을 전체 그룹에서 눈 밖에 나는 사람들로 여겼을 것이다; 그에 반해 오늘날에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이 오히려 혁신적으로 보일 정도다. 레크비츠는 약간은 절망이 묻어나오는 톤으로 말한다. 창의성이라는 극단에 완전히 의지하는 것은, 사회적 규범과는 구별되면서도 모범이 되게 한다. 사회적인 기대와 각자의 욕구는 하나가 된다. "우리는 창의적이 되고 싶어하며 – 그래야만 한다."
레크비츠가 얼마나 고집스레 "후기 모더니즘"에 대해 말하는지가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그는 정말 진지하다. 후기 모더니즘은 레크비츠에게 늙은 모더니즘이 그의 발전에 대한 약속을 파기하고 미학적 자본주의가 승리했음을 뜻한다 – 미학적 자본주의는 모든 모순의 위험을 제거하고 이 "창의적"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이 시스템에 탈출구는 없다, 샛길로 빠지는 것만이 허용될 뿐, 이조차도 결국 거대 시스템에 속한다. 레크비츠는 이 작은 길, "비종교적인, 현실적인 창의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즉, 상업적으로 이용당하는데 저항하는, 이를테면: 도시 어딘가에 정원 만들기 ("게릴라 정원 만들기"), 청소년 시설을 세우거나 (함께) 연극 혹은 (홀로) 음악 하기와 같은 활동 같은 것들 말이다. 이 "현실적인 창의성"이 누군가에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기에, 이 창의성은 자신의 적인 게으름을 편히 대할 수 있다. 밖에서 후기 모더니즘이 발랄하게 그리고 후기 모던의 계속되는 자기 발전을 위해 창조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동안, 현실적인 창의성은 삶을 그저 "있는 그대로" 둘 수 있다.
"작품이 말하게 놔두라!" 요즘 자주 들려오는 이 말은 작가의 침묵을 전제하는 동시에 많은 논쟁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예술가 내일리 바그라미안Nairy Baghramian은 뉴욕 예술과 정치를 위한 조각센터SculptureCenter와 더 뉴 스쿨The New School의 베라 리스트 센터Vera List Center가 공동 주체한 강연 시리즈 "조각의 주관적 역사"에서 최근 미술의 경향 중 하나로 보이는 작가와 작품의 주체-객체성의 전도를 미술사적 관점에서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바라봅니다.
저는 강연보다 이를 토대로 쓴 글을 먼저 접했습니다. 독일 미술 출판계에서 중요한 입지를 갖는, 그리고 학술적이고 난해한 문체로 대표되는 미술 잡지 텍스테 추어 쿤스트Texte zur Kunst 2012년 9월호에 실린 글이었습니다. 처음에 글만 봤을 때는 성급한 마무리를 짓는 결론 부가 아쉽다고 느꼈는데 강연 당시 비디오를 보고서는 이런 부분들을 잘 보충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 쟝-뤽 고다르Jean-Luc Godard의 영화 경멸Le mépris의 일부를 보여주고 이어지는 관객과의 질의응답에서 영화를 마지막에 보여준 이유를 설명합니다. (본문 아래에 비디오 첨부)
글 : 내일리 바그라미안Nairy Baghramian / 번역: 정소현
예술작품이 주체적인 존재로 다뤄진 건 도쿠멘타dOCUMENTA 13에서 만이 아니다. 작품을 자율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예술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품이 살아나는 경향은 예술가 주체의 침묵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오브제가 "스스로 말하는" 동안 예술가는 예술에 대한 논의에서 배제되거나 자발적으로 빠진다. 이에 대해 내일리 바그라미안Nairy Baghramian은 예술가의 목소리를 키울 것을, 예술가 자신의 작업을 바탕으로 예술의 기본에 대한 논의에 적극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주체에서 객체로 그리고 객체에서 주체로
지난 몇 년여간 작품의 위상은 자율적 존재라는 면에서만은 성장한 듯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예술작품이라는 표현이 쓰일 정도니 말이다. 이는 철학적 관점에서야 분명 흥미로운 소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개는 자율적으로 생각하는 예술작품이 본격적으로 스스로 행동하고 심지어는 큐레이터와의 긴밀한 대화에까지 끼어들게 한다. (그림에 기초한 작품을 물론 포함한) 객체는 자신과 다른 객체 사이의 연합과 친화성을 적극 배포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예술작품이 말하고 살아있으며 예술가는 물론 작품을 둘러싼 논쟁보다도 오래 살아남을 거라는 인상을 준다. 마치 주체를 가지게 된 작품이 괴물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에 관한 책임을 책임을 최신 논쟁에 떠넘기며 작품을 독립된 존재로 대하는 동안 큐레이터, 예술사가 그리고 비평가들은 이 괴물을 보살필 기회를 얻는다. 나는 이런 예술가들과 달리 예술가가 자기의 작업을 변호하는 역할 정도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로서 논쟁을 각오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예술가적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예술가는 예술과 그 가능성에 대한 아직 끝나지 않은 논의 내 기본적인 질문에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나 많은 예술가들이 담론에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흔쾌히 담론의 희생양인 체하는 요즘, 나는 이를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작품이 주체가 되는 경향은 예술가 주체의 계속되는 침묵을 바탕으로 자라난다. 예술가는 침묵함으로써 자신을 신비화시키는 오브제가 될 위험을 스스로 떠안는다. 다시 말해 그들은 스스로 무력화하며 침묵하는 상품이 될 준비가 되어있다. 큐레이터와 평론가 그리고 통제 아래의 미술 시장이 행동하는 존재로서 토론 영역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동안, 예술가에게는 "페티쉬 오브제"라는 이름표가 달리게 된다. 예술가라는 이름에 대한 유일한 항변이라고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이미 그 필연성을 잃은 영원성이라는 전통적 비전만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예술 내 토론의 가능성은 어디 있는 것일까?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의 작업, 무제(서 있기 위한 상자)(1961), 관객을 실물 크기의 세로로 세워진 직사각형의 나무 상자 안에 세움으로써 관객은 작업 일부가 되는 동시에 전시되는, 제도적인 문맥이 된다. 빈 상자는 관객 혹은 예술가와 같은 행동하는 주체가 없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오브제 자체만으로 무언가를 하는 게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지금 이 자리에서 끝없이 예술작품의 자율성, 혹은 생각하는 오브제로서의 예술작품에 대해 논의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미학적 경험을 둘러싼 공공 기관의 비평이나 기본적인 논의가 없었다는 듯이 예술작품이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자발적 경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 가치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1960년대를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예술작품을 생각하는 오브제로 다룬다는 면에서 같아 보일지 몰라도, 당시에 관객과 제도적, 사회적 요건이라는 관계를 전제했다는 면에서는 다르다. 예를 들어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의 작업 "무제(서 있기 위한 상자)"(1961)는 관객을 실물 크기의 세로로 세워진 직사각형의 나무 상자 안에 세움으로써 관객은 작업 일부가 되는 동시에 전시되는, 제도적인 문맥이 된다. 빈 상자는 관객 혹은 예술가와 같은 행동하는 주체가 없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오브제 자체만으로 무언가를 하는 게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작품이 스스로 생각한다는 믿음이 극단에 달해 작품이 주체가 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관객인 우리 자신까지도 마치 정신분열적으로 작품에 예속되게끔 위협하는데 이런 구조는 다름 아닌 예술작품 주변을 둘러싼 구조다. 그뿐만 아니라 비평가는 예술작품과 모든 것을 연관 지어 다루면 그만이라는, "작품은 스스로 말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콘셉트의 일부기도 하다"라는 태도를 보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술작품은 그저 반응하는 스크린이 된다.
시간 프레임
또 다른 예로 오스트리아 빈의 무목MUMOK에서 열린 전시,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erg. 60년대The Sixties"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아힘 호흐되르퍼Achim Hochdörfer가 올덴버그와의 긴밀한 공동작업으로 준비한 이 전시는 전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난 십 년간 제작된 작업에 예술 작품의 자율성을 녹여내고 다른 작품과 함께 전시하므로써, 각 작품은 비로소 그 의미를 획득한다. 이 전시는 역사로의 의식적 회귀를 통해 연결 고리를 만듦으로써 공간의 수사학과 작업의 배치에 관한 연구처럼 보인다. 이 전시에서 예술 작품은 세상만사에서 자유로운, 유령같이 떠다니는 존재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힘 호흐되르퍼가 만들어 낸 60년대 담론과의 역사적 그리고 사회-정치적인 연결고리는 그의 전시를 구성하는 형식적인 결단이 그 당시 시대에 바탕을 둔다는 것을 어느 정도 명백하게 함으로써 어째서 오늘날 우리가 당시의 담론에 몰두해야만 하는지를 확실히 한다. 이러한 전개를 철저히 추적하면 할수록 자발적인 예술작품이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은 더해만 간다. 예술은 항상 문맥과의 연관 속에서 읽혀야 한다. 예술작품은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그가 속한 문화 습관 형성에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예술작품과 관객의 만남은 예술이 사물을 사용하는 방식이 일상적인 사물로서의 습관적인 쓰임과는 의식적으로 차별을 뒀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로써 이러한 미학과 정치가 무언가를 변화 시킬 수 있음이 뚜렷해진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의 영역에서 빠져나와, 우리가 당연시하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많은 문화적 영향 아래 있었는지를 다시금 돌이켜보게 한다.
어째서 지금 이 화두인가
1992년 출간된 디디 후버만Didi-Huberman의 같은 제목의 책,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를 본다는 명제를 추적하는 동시에 60년대, 특히 미니멀 아트를 관찰하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이런 방향의 주장을 펴는 이들의 글이 그 자신의 예술적 생산물에 모순됨을 종종 보게 된다. 미니멀리즘에서 가장 흥미로운 논의는 이런 모순과 논쟁을 예술가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이런 담론-오브제-관계에서의 모순은 미니멀에 대한 태도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예술작품에 대한 수용 태도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오브제를 생성시킨다. 이에 대한 한 예로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에세이 "예술과 건축Art and Architcture"(1983)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밖에서 관찰한 게 아닌, 나 자신의 작업에서 예술에 대한 몇몇 질문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예술가는 아이디어와 원리 원칙을 당연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아이디어와 원칙은 작품이 만들어지기 전에 전부 표현될 수도, 아이디어에서 작품으로 버튼을 누르듯 간단히 전환 될 수도 없다.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 특히, 떠오르는, 영향을 미치는 모든 아이디어와 속성을 끝까지 추적하고 표현해내는 것은 예술의 기본 조건이다. 이런 아이디어와 성질, 재료와 작품 형식은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낸다. 빨간색은 아마도 고유의 특정한 성질은 가진 것 듯하다. 하나의 작업은 이런 성질을 포함하고, 그리고 이는 관계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한다. 어쩌면 빨강이라는 고유의 성질 자체가 이 변화를 불러온 걸 수도, 반대로 애써 생각해낸 아이디어 혹은 고유 성질이 이 빨강을 불러들인 걸 수도 있다."
그의 말을 통해 당시 오브제 전략 또는 순수 제작 과정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제작과는 별개로 진행되었던 논의가 스스로에 대해 반추하고 논의에 참여하게 할 가능성을 마련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와 달리 1980년대에 행해진, 특히 회화를 둘러싼 논의에서 예술가, 화가들은 자신을 과도하게 주체화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작품과 예술가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다. 1990년대, 예술가가 60년대 개념미술과 깊은 연관을 가졌던 시대는 예술작품으로의 다시금 새롭게 무장한 비판적인 접근과 예술가 주체에 대한 회의주의를 보장하고 있었다. 예술가는 무엇보다도 정치, 사회적 존재로서, 논의를 만들고자 하는 문화 생산자로서 입을 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에 그들이 그들의 예술작품을 미술 시장에서 팔리는 예술작품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없었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에는 그들의 작품도 예술작품이라는 위상을 갖게 되었다.
요즘 들어 예술가들이 작품에 대단히 많은 인용을 넣는 모습이 눈에 띈다. 예술작품의 문맥을 강조하던 90년대와는 달리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인용 자체를 전시한다. 이는 종종 자동 역사화라는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인용이 각주라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 작품의 대변인이 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전복은 예술가가 그의 작품이 제삼자에 의해서야 분석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베일에 싸인 제작자라고 생각하는 동안, 전략적으로 계산된 참조가 해당 예술작품의 가치를 증대시킴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런 발전 과정은 또한 예술가가 항상 의견 개진에 주저하고 침묵 속에 안주할 이유가 되는 듯하다.
큐레이터와 비평가는 공동의 관심사에 가까운 기준으로 참조의 적정선을 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정은 비평가들이 더 잘 다루는 영역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비평가가 논리적으로 우월하게 되며 예술가가 큐레이터의 입맛에 맞춰 생산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 결과 모호한 과정 예술에 가까운, 불분명한 예술 오브제, 예를 들어 아르테 포베라를 닮은 예술 사조가 나타난다. 당시 아르테 포베라라는 미학 형식이 치열한 정치적 논의를 한 결과이자 공공 기관의 안정적인 상태에 반하는 저항적 선언으로써 가난한 재료를 선택한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예술 작품 생산을 보며 사람들은 이 "싼 재료"에 거의 동정심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예술작품은 그저 형식적인 구성으로만 보이며 권위 있는 아틀리에에서 탄생한 작품의 인기 있는 대변자로 존재하게 된다. 이는 공공 미술에서처럼 예술가가 아이디어를 제안해야 하는데다가 예술이 주문 제작이 되도록 큐레이터의 전체 콘셉트에 맞춰 예술이 일종의 "주문 제작 기술"이 되게 한다. 이런 예술가로서 접근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보다도 행위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문화적 과정이나 정치적 토론 없이도 작품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안드레아 프레이져Andrea Fraser의 비디오 무제(2003), 예술가는 미술품 수집가와의 섹스를 통해 자본주의의 효용 구조 속에서의 자기 상품화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이런 부류의 경험은 예술가들이 입을 다물수록 작품들은 더 자율적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예술 작품을 "스스로 말하게 두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예술가는 기껏해야 자기 작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려 할 때나 입을 연다. 한편으로 이는 작가와 작품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예술가가 미술품 수집가와의 섹스를 통해 자본주의의 효용 구조 속에서의 자기 상품화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안드레아 프레이져Andrea Fraser의 비디오 "무제"(2003)에서처럼 의도한 작업 방식으로서가 아닌,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감수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안드레아처럼 프레이져처럼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것에 무게를 두는, 퍼포먼스적 행위로 시스템 내부에 질문을 던진다거나 자신이 예술 작품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하는 예술가들은 늘 있었다. 이들은 주체로서의 예술가를 자기 작업에서 본질적 요소로 본다. 퍼포먼스적 과정은 관객과 작품이 전시되는 문맥 속에서 서로 만나는 순간에 생겨난다. 이런 식으로 생겨난 교환의 관계는 문화적 질문에 대한 기본적 태도를 바꾸고 다음 단계에서는 변증법을 통해 순수한 주체-객체 관계의 단계로부터 더 나아갈 역량을 갖고 있다.
타이밍Timing VS 위치하기Placing
객체-주체 관계를 다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공식기관의 업무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공공 기관들은 중요한 토론이 펼쳐지고 또한 지속될 것을 보장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재정 축소 때문에 먼 미래를 바라보고 설계한 공공기관의 구조를 별수 없이 망가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 때의 유행과 짧은 기간 조성된 미술관,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마니페스타, 도쿠멘타 등등의 초대형 전시의 누적은 이런 공공기관이 그들의 계약을 지속시키지 못하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예전에는 그런 이벤트 성격의 초대형 전시들이 몇 년여의 간격을 두고, 당대의 예술 흐름을 돌아보는 동시에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예측하는, 말하자면 한 시대를 갈무리하는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세계화로 이런 여러 전시를 동시에 방문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는 늘 똑같은 예술 작품으로 돌아오는 끝없는 데자뷔Déjà-vu다. 공간적 특성은 타이밍으로 대체되었고 평행선적 발전은 예전에 논의한 다양한 과정 정의의 개념을 향해 간다. 이 세계화의 과정을 멈춰 세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어째서 이 시대의 대형전시와 그 영향에 대해 생각해야만 하는지를 말해준다: 예술 작품은 상위 개념으로 분류된 전시 아래 속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장소-특정성
공공 기관과 타이밍에 대한 이런 설명은 내게 장소 특정성이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며 놀랍게도 무목에서의 올덴버그의 작업으로 돌아오게 한다. 이제껏 그의 작품은 공공기관과 전시에서 항상 자율적 오브제로 보여졌다. 그런 탓에 그의 오브제에 대한 기대는 팝 아트에 맞춰졌다. 무목에서의 전시는 프레젠테이션과 작품선별을 통해 이 기대에 정확하게 대항할 수 있었다. 각각의 작업은 당시와의 시간적 공간적 연관 지음으로써 올덴버그 콘셉트의 퍼포먼스적 성격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의 작업을 팝 아트 영역에만 위치시키는 것은 그의 작업을 축소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집중된 큐레이터적 전력투구와 변화된 시선의 강조를 통해 이를테면 에바 헤세의 작업과의 연결이 훨씬 가까워지고 당시 올덴버그의 미니말 아트에 관한 논쟁 또한 팝 기준에 억지로 재단해 이룬 순수 성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집의 핵심Essence of the house
예술작품이라는 게 원래의 문맥에서 떼어내, 오로지 이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져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공공기관에 전시Präsentation됨으로써 무언가를 대표Repräsentation하는 형상으로 바뀐, 무엇보다도 자율적인 오브제였다고 칠 때, 오늘날 작품이 얼마만큼이나 그에 맞설만한 대항적 조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예술을 위한 장소, 이를테면 미술 오브제를 알리는 것과 연관된 (그리고 이런 식으로 예술의 이상에 이바지하는 기호학적 구조를 만들어냈던) 미술관이나 다른 공공 기관을 만들려는 욕구는 여행자들이 여행지에서 발견한 물건이 여행지의 특색을 드러낸다고 여겨 오브제를 보여주고자 하는 소망에서 생겨났다. 예술가들은 정확히 이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집을 제대로 인식하려 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들은 - 철학에서 집의 은유처럼 - 그들이 끊임없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 이와 연결된 전시 조건 또한 보게 되었다. 이를 통해 예술 작품 속에 쓰인 논의는 전시를 둘러싼 변수와 떼어놓을 수 없게 된다. 이는 작품을 장소 특정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된 이유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장소 특정성은 예술 작품의 자율성에서 나오는 게 아닌, 예술적 의도로 볼 수 있다. 장소 특정성은 되려 문맥에 기초한 규율과 자신에 관계된 가능성을 반성하는 데 이용될 수 있고, 상위에 놓인 경제, 정치, 사회 그리고 문화적 층위와 연관 지을 수 있다. 이는 공공기관과 그에 딸린 조건이라는 그물망 덕에 가능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특별한 관계를 적게 맺으려는 경향은 전시 기획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에도 늘고 있다. 이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지 못하는 큰 전시 때문이다. 이를 통해 예술작품은 너무도 가볍게 인기 많은, 이해하기 쉬운 전시 피스가 되어버린다. 이런 발전 과정은 장소 특정적 담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그리고 자기 반성적 공공기관적 개념이 손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솔직히 말하자면: 담론에 바탕을 둔 예술작품은 그 반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딘지도 모를 장소에 작품이 전시될 때 그저 순수한 전시 오브제로 보여지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경멸Le mépris
오늘날 주체와 객체의 인접함은 오히려 혼동과 잘못된 분류, 둘 다로 이끈다. 남는 것은 잊혀지고 여기저기로 보내지는 작품과 특색 없이 입 다문 벙어리 생산자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 직면할 때 과거에 대안적이고, 정말 긍정적으로 치솟는 예술 오브제와 예술 주체가 하나 되는 것을 염원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예로 (주체-객체-관계와 예술적 논의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 불렸다 하더라도) 앤디 워홀Andy Warhol 그리고 사회적 유토피아에 함께 관심을 가졌으며 그들의 미학적 노력 너머의 세상을 만들어 낸, 억압과 관습에 대항해 오늘날 우리의 정치적 현실에 이바지한 모든 예술가, 배우, 작가, 그리고 드랙퀸등을 들 수 있다.
무언가를 태우거나 부수는 예술가, 이러한 현장을 생생히 기록하기 위해 분주한 카메라 맨 그리고 그들을 촘촘히 둘러싸고 숨죽이며 지켜보는 관객들은 흔히들 퍼포먼스 아트 하면 떠오르는 장면일 것입니다. 기존의 퍼포먼스는 주로 작가 스스로 행위자Performer가 되고, 전시 오프닝과 같은 특정 시간에 일시적으로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현재 성과 장소 특정성"을 강조하여 영상 미술Video Art과 차별성을 두고자 했으나 정작 미술관에 전시될 때는 결국 영상 기록의 형식으로 보여지곤 했습니다. 이런 기존 퍼포먼스의 시공간적 제한성에 반하는 시도가 얼마 전 에센의 폴크방Folkwang 미술관에서 있었습니다. 클라우스 비센바흐Klaus Biesenbach와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Hans-Ulrich Obrist가 기획한 전시 12 Rooms가 바로 그것입니다.
전시장에는 약 5m²에 달하는 12개의 방이 있고 각 방에는 참여 작가의 지시에 따라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배우들이 있었습니다. 보통의 전시장이라면 DVD 플레이어와 모니터 등의 기계를 통해 반복 재생될 퍼포먼스 기록 영상의 자리를 이번 전시12 Rooms에서는 배우로 대체되었습니다. 기계적 반복이긴 했지만,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배우들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단 점에서 흥미로운 시도가 돋보였습니다.조안 조나스Joan Jonas의 전설적인 퍼포먼스, 거울 체크Mirror Check(1970)[1]를 이번 전시에서 실제로 볼 수 있었는데요, 이는 분명 1970년 당시 기록된 영상을 보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배우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우연히 교차한 순간에는 미묘한 민망함과 동시에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현장성이 아마도 퍼포먼스만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거의 같은 작가와 작품으로 2011년에 맨체스터에서 11 Rooms라는 전시가 있었고, 2013년에는 13 Rooms라는 전시가 시드니에 있을 거라는 점은 다른 한편으로 이 새로운 경향이 너무 "완성된 상품으로서의 전시와 작품"을 향해 가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상품성을 갖지 못한다고 여겨지던 퍼포먼스를 이런 방식으로 전시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기사에서는 전시를 충실히 요약하는 한편, 전시된 장애인에 대해 도덕적 질문을 던집니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8월 21일 자에 실린 기사를 소개합니다.
글 : 안체 슈탈Antje Stahl / 번역 : 정소현
루어 트리엔날레Ruhr Triennale의 일환으로 에센의 폴크방Folkwang 미술관[링크]에서는 일주일간 라이브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양식을 소개한다
인간은 자기 주변의 혼동을 정리하고 싶으면 분류하기 시작한다: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함을 마련해 라벨을 써 붙이고 그에 맞는 물건을 집어넣는다. 이런 정리의 장점은 그가 필요한 물건을 어디서 찾을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 단점은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상이 깔끔히 포장되어 한 개의 정리함 속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주의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기서 잊혀진다.
이와 같은 방식은 에센의 폴크방 미술관이 보여주듯 예술 분야에서도 통한다. 이곳에는 방 크기만한 열두 예술가의 열두 상자가 있다; 큐레이터 클라우스 비센바흐Klaus Biesenbach와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Hans-Ulrich Obrist는 이를 "열두 개의 방"이라 부른다.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상자들.
12 Rooms, 마리나 아브라모빅의 Luminosity(1997). 3미터 정도의 높이에 벗은 몸으로 벽에 걸려 있는 배우는 사각형으로 비치는 조명 덕에 더욱더 성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모티브를 떠올리게 한다. 방문객 한명 한명과 긴 시간 동안 눈을 맞추는 그녀의 시선은, 마치 '바로 당신, 당신이 나를 못 박았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사진: Heiko Klaas
이런 상자 같은 방에 조각이 아닌, 발가벗은 살아 숨 쉬는 여자가 들어있다. 그녀는 손에 거울을 들고 그녀의 몸을 탐색한다. 또 다른 방에는 다른 여자가 벽에 걸려 있다. 약간은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 걸린 모양새로 말이다. 다른 점이라면 못 박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 그녀는 벽에 박힌 좁은 널빤지 위에 걸터앉아 사방으로 뻗은 사지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몇 발자국 떨어져 있는 방에는 다운증우군 장애인이 무방비 상태로, 조용히 어두운 구석에 누워있다. 또 다른 방에는 퇴역 군인이 구석에서 벽을 응시하고 있고 다른 방에서는 한 학생이 선탠 캡슐에 익어져서는 이어폰으로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예술 작품이다.
얼마 전 새로 나온 책 "인공 지옥Artificial Hells"에서 미술 비평가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은 행위 예술과 조형 예술의 경계를 파괴하는 예술 형태의 미술사를 추적한다. 거의 백여 년 전부터 예술가는 전시 오브제, 예술가 그리고 관객 사이의 전통적 차이를 좁히려는 시도를 해왔다. 에센 전시에 균형을 잡는 여성 예수를 출품한 마리나 아브라모빅Marina Abramovic은 1974년까지만 해도 그 자신을 전시하였다. 책상 위에는 가위 채찍 그리고 권총이 놓여있어 관객들이 이 사물들을 집어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여섯 시간의 퍼포먼스 동안 그들은 아브라모빅의 옷을 자르고, 반나체가 된 그녀를 전시장에 끌고 다니고, 상처 입히고 장전된 권총을 그녀의 머리에 겨눴다. 1971년 스텐퍼드 대학에서 시행된 감옥-실험의 변형된 버전처럼 들리는 이 퍼포먼스는 심리적 억압을 위한 죄수 사이의 실험 못지않은 긴박감을 예술에도 가져다주었다: 오브제처럼 행동하는 인간은 오브제로 취급된다.
비슷하게 불안정한 상황을 90년대 이후 또 다른 한 명의 예술가 역시 에센에서 연출해 낸다.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 다른 조건에서 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작가 자신, 즉, 본인의 몸이 아닌, 이민자, 창녀, 또는 퇴역병을 고용했다. 그들은 최소한의 보수를 받고 상자 속에, 트렁크에 들어가고, 삭발이나 문신을 당하거나 - 폴크방 미술관에서와 같이 - 방구석에 서서 벽을 응시하라는 명을 받는다. 이 미술관에서 방문자는 미학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인간에게 부과된 일종의 고통을 목격하게 된다. 비평가는 이 부분에서 시에라를 날카롭게 공격한다: 전시된 인간은 여기서 마치 자판기의 버튼을 누르듯, 냉소적인 방식으로 그의 존엄까지 전시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끌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미화된 고통 같은, 일종의 항변인 예술을 말이다. 또 다른 비평에 따르면, 미술관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고통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라 한다. 그저 우리가 지나쳐 왔을 뿐. 비평은 삶과 예술, 윤리와 미학 사이를 왔다갔다한다.
이번 전시 12 rooms에서 무릎 꿇어 라우라 리마Laura Lima의 Men = flesh, Women = flesh(1997)를 보고 있는 관객들, 그들이 들여다보는 "전시된 장애인"은 어둠 속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Heiko Klaas
폴크방 미술관에서도 이런 모순이 드러난다. 여기서 다루는 문제는 결국, 계약 퍼포먼스, 예술가에게 특정 행위를 할 것을 요구받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개개인이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소녀를 마치 전시물처럼 전시하는 것은 괜찮은 걸까?; 큐레이터에게는 배우가 기괴한 자세로 기둥에 기대어 자기 자신을 의식적으로 살아있는 그림Tableau vivant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장애가 있는 사람이 구경꾼의 시선에 방치되는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가?; "인간 기형을 그저 오브제로 만들어 버리는" 인간 구경이라는 못된 전통의 미미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가? 형사법에서 금지하고 있듯이 말이다. "장애를 가진 이는 어떻게 느낄까요?" 한 방문객이 묻는다. "이런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말이죠." 장애인이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해 해방이라는 행복을 위한 행위인지 혹은 기괴한 미학이라는 이름 하에 비인간적인 그의 장애를 전시하는 행위인지 크리스토프 슐링엔지프Christoph Schlingensief의 연극에서 이미 이런 질문은 던져진 바 있다.
이런 논의 너머에 움직이고 말하고 느끼고 화내고 일하는 사람이 전시되는 것에 관한 분류가 미술관에 생겨났다. 요즘 "라이브 아트"라고 불리는 이 영역에는 마리나 아브라모빅,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티노 세갈Tino Sehgal 혹은 시몬 후지와라Simon Fujiwara 같은 다양한 예술가들이 분류될 수 있다. 행위자들의 헌신 외에도 예술가들이 일종의 글을 쓴다는 것, 재연할 수 있도록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글로 적어 둔다는 점도 그 특성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런 상자-상황은 이미 지난 몇 년 전 맨체스터에서 체험해 볼 수 있었다. 2011년에 이 단체전은 "11개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었고, 2013년에는 그에 맞는 "13개의 방"을 가지고 시드니에 전시가 있을 예정이다. 큐레이터와 예술가는 이름 하여 "라이브 아트"를 운송하고, 문서화하고 임의의 시간에 창고에서 꺼내오는 것 등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 계속해서 공연될 수 있는 악보, 한 작품이 있다. 이는 예술 시장에 흥미로울 수도 있는 부분이다 - 이제는 삶 자체를 수집할 수 있다. 악보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연극에서, 말하자면 삶이 양식인 그곳에서는 이미 불안이 사라진 지 오래다. 발가벗은 몸덩이는 표현 양식이 되어버렸고, 이런 양식이 반드시 작품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피곤해한다: 어휴, 또 저항 타령이군. 여기에 예술은 한 가지를 보탠다 - 배우 대신 장애인까지 쓰는 것이다. 여기로부터 나오는 도덕적 문제는 "라이브아트"라는 예술 장르 전체의 질까지도 끌어내릴 수도 있다: 시에라의 무거운 분위기의 미학 화는 장난스러운 티노 세갈의 안무와 거의 연관이 없고, 이 전시에서 진짜 몸을 통한 말 걸기와 대면하기라는 놀라운 경험, 미술관을 자신의 삶의 무대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전시된 장애인에 대해 놀라는 것과 별 연관이 없다. 라이브 아트는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대강 분류 상자에 정리해 넣은 개념인지 모른다. 이는 다른 말로는: 이 전시의 많은 부분은 작품이 분류된 그 개념보다 낫다는 말이다.
12 Rooms. Live Art. 루어 트리엔날레, 폴크방 미술관, 에센, 8월 26일까지.
[1] 조안 조나스Joan Jonas의 거울 체크Mirror Check(1970)는 70년대 작가 자신이 관객 앞에서 자기의 벗은 몸을 손거울로 스캔하듯 훑어 보는 작업에서 작가의 거울을 통한 시선, 자신을 관찰하는 작가를 관찰하는 관객의 시선은 작업의 중심이었지요.
호평 속에서 시작된 이번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13에 대한 비평가들의 견해는 전시가 끝난 지금, 어느새 둘로 나뉘고 있습니다. 초반 대다수를 차지하던 호평은 아마도 지난 2007년, 도큐멘타 12와의 대비 효과 덕일지 모릅니다. 전시 개념을 인위적으로 제시하고 좁은 공간에 작품을 빽빽이 나열하던 저번 도큐멘타에 비해, 이번 도큐멘타는 자연스러운 주제 제시, 도서관, 옷 가게, 비어있는 건물 등 도시 곳곳과 드넓은 칼스아우에 공원에 조그마한 오두막집 같은 파빌리온을 만들어 한 작가가 하나의 파빌리온에서 전시하는 등, 공간을 넉넉히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기록적인 더위가 있던 지난 달, 카셀에 다녀왔습니다. 브레인Brain이라는 이름의 전시 속 작은 전시가 있는 프레디리시아눔Fridericianum을 방문한 저는 언론의 긍정적인 평가를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주제 면에서나 접근 방식에서나 응축하는 브레인에는 너무나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거의 5000여 년이 된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발굴된 박트리아Baktrisch 공주 조각상, 전쟁으로 불타버린 박물관에서 꺼내온, 불에 녹아 뒤틀리고 수축된 조각품, 2차 세계대전 독일 패전 후 히틀러Hitler의 방에 잠입해 들어가 찍은 리 밀러Lee Miller의 사진 등과 함께 지난 2011년 이집트에서 시위 중 숨진 작가, 아슈메드 바지오니Ahmed Basiouny의 비디오 작업, 기괴한 도자기 속 자기만의 삶을 사는 타마라 헨델슨Tamara Henderson의 비디오 작업 등이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물과 현대 미술을 함께 배치하는 방식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작품 하나하나의 깊이, 그에 대한 이해에 요즘 만나 보기 드문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가르치려 드는 방식이 아닌 너무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세련되게, 그러니까 시적詩的으로 이 시대를, 그리고 이번 도큐멘타의 주제: 붕괴와 재건Collapse and Recovery을 담아내는 큐레이터의 손길에 감탄을 마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도큐멘타의 대표이자 큐레이터인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르기에프Carolyn Christov-Bakargiev는 전시 개념, 강연과 여러 글에서 드러낸 그녀의 개방성과 얽매이지 않으려는 태도 탓에 다스 쿤스트 마가진 아트Das Kunstmagazin Art에서는 마담 메이 비May be라 불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내세울 만한 이런 장점이 큐레이터가 집중력을 잃는 한 순간, 모호함으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녀가 공을 들인 프레데리시아눔에서는 엉성하고 단순하게 보이던 작품도 개념 미술과 서술적 미술의 적절한 안배를 통해 결국은 멋진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도큐멘타의 모든 전시 장소, 이를테면 뉴 뮤지움Neue Museum이나, 칼스아우에 공원까지 이런 깊이와 균형을 갖춘 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바로 이런 임의적 태도는 실은 중요한 주제까지 애매하게 다루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여전한 젠더 문제라든지 생태학에 대한 담화는 엉성해지고 맙니다. 다른 이들은 도큐멘타의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봤을까요? 쥬드도이췌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에 6월 26일에 실린 도큐멘타에 대한 비평 글을 소개합니다. 전시는 6월 9일부터 9월 16일까지 100일간 계속 되었습니다.
글 : 키아 바란드Kia Vahrand / 번역 : 정소현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대신, 도큐멘타 13은 미혹하는 자연 정경 속에서 길을 잃는다. 카셀에서 생태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다시금 모든 것을 돌봐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 그리고 그 모든 것이란 개와 토마토라 한다
도큐멘타의 주제와 접근 방식을 응축하는 전시 속 작은 전시, 브레인은 사진에서와 같이 프레디리시아눔에 들어서면 유리를 통해 내부가 보이고 한 층 올라가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이런 유리를 통해 들여다 보이는 전시실의 구조는 프레디리시아눔 여기 저기에서 만날 수 있다.
예술에는 거의 모든 게 허용된다. 웃기는 것은 물론이다. 도큐멘타 대표 크리스토프-바카르기에프Christov-Bakargiev가 딸기의 투표권을 주장했을 때, 토마토가 만들어 낸 문화 상품을 칭찬했을 때, 거미줄을,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발명을 예술이라 칭하고, 근본적으로 여자와 동물, 팔찌에 차이가 없다고 했을 때 (쥬드도이췌 차이퉁, 이하 SZ 5월 31일 자) 사람들을 웃게 했다는 점에서는 일단 성공이었다. 이제 도큐멘타가 오픈한 지 6주가 지났다; 그녀의 제안, 동물 해방이 여성 해방의 뒤를 이을 거라는 생태 페미니즘[1]이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가? 우리는 이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는가 - 또 이는 예술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간과 동물이 동등하다는 그녀의 언급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이는 없다; 그들은 웃어버린다. 동시에 이는 다른 말로,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단순한 논리라는 얘기다. 이제까지의 모든 도큐멘타가, 단 한 회도 빠짐없이 시대를 다루는 데 힘을 쏟았기에 누구도 선뜻 그녀의 말을 단순 우스갯소리로만 취급하지는 못한다. 첫 번 전시인 1955년, 독일인들은 그들 자신의 어두운 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예술은 당대를"변질되었다entartet[2]"고 하며 장애에 비하고 세상으로부터 제거하려 했다. 1959년 두 번째 전시는 문화가 유럽에만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 이는 일종의 자기 확신에 대한 계속되는 비방이었다. 1972년에 다섯 번째 도큐멘타는 사회적 반성의 혼동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었고 자신의 "개인적 신화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 "를 확실히 하도록 했다. 9·11 테러 이후 2002년 열한 번째 도큐멘타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는 관객들에게 세계화를 직면하게 했고, 이후 2007년 전시에서는 아마도 곧 닥칠 경제위기라는 폭풍 전야의 고요함을 "미술관"이라는 비단 커튼을 등장시켜 반영하고 - 새로운 절대 권력, 중국을 도발로 해석한 아이 와이와이Ai Weiwei가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데 일조했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꿀 펌프는 전혀 로맨틱한 의도가 아니었다 아쉽게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도큐멘타가 그 시대에 어느 정도 적절했는지 평가할 수 있다. 이번 도큐멘타는 아프가니스탄과의 예술적 교류로, 혹은 크리스토프-바카르키에프의 전쟁으로 손상된 예술 작품에 대한 우려로 기억될지 모른다. (SZ 7월8일 자, 7월 14일 자) 어쩌면 몇 년 내로 신로 오타케Shinro Ohtake와 같은 작가의 유머러스한 초 현실-카오스를, 또는 물리학자, 세포학자, 화가의 공동작업을 시대 전형으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큐레이터에 의하면, 혹은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도큐멘타 13은 인간 중심적인 사회로부터 더 이상은 인간이 창조하지 않은 세상으로 가는 여로에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예술에서 실현돼야 한다는 주장은, 일단은 어불성설로 들린다. 인간은 창조자로서 신과 대립함으로써, 애초부터 예술은 자연에 반反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기원후 400년까지도 교회 사제 아구스티누스Augustinus는 인간은 풀 떼기 하나조차 모사할 능력이 없다고 여겼다; 그 이후 르네상스의 휴머니즘 시대가 왔고, 화가와 조각가는 창조를 흉내 내는데 그치지 않고, 개선할 줄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모더니즘 후기에, 예술가는 점점 더 어머니 자연의 역할을 넘겨받았고 그의 생산성을 발휘했다. 디터 로트Dieter Roth는 초콜릿 조각에 곰팡이 포자가 스스로 작업하도록 했고, 요셉 보이스는 코요테를 예술로 끌어들였을 뿐 아니라, 도큐멘타 6에 프레디리시아눔Fridericianum의 하얀 복도를 달콤한 재료가 호스를 통해 덜컥이며 달리도록, "일터의 꿀 펌프"를 설치했다.
그것은 로맨틱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역동하는 그리고 기계적인 삶에 대한 은유였다. 35년 후 2012년 현재, 보이스는 카셀[도큐멘타13]에 초청되지 않았다. 그는 역사로 이해되기보단 전설로 읽히고, 존경받고 있다 - 그의 자연을 향한 열심, 또 정치적 저항 의지와 예술을 연결한 면에서 말이다. 아우에Aue, 오란제리Orangerie, 프리데리시아눔, 바인베르그Weinberg에 놓인 수많은 작품들은 그들의 원조 격인 보이스를 인용한다. 크리스토프-바카르기에프는 예술가에게 대부분 주문을 한다. 오늘날의 도큐멘타-대표는 모든 분야에서 후원자다. 옛날에 왕과 교황이 그랬듯, 큐레이터들은 백여 개의 작품을 주문하고, 예술가들이 하도록 놔둘 경우라도 바카르기에프가 그랬듯, 선별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개인적인 흔적을 온전히 남긴다. 이는 큰 장점이 된다: 전시에 통일감을 주고 [대중의 취향에서 벗어남으로써] 시장과 거리를 두게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방문객들은 어쩌면 그들의 실제의 삶과는 별 관련 없는, 한 인간의 취향을 대면하게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다: 크리스토프-바카르기에프는 생태 페미니즘에, 무엇보다도 그 첫 어절[생태]에 감동 받았다. 그녀는 페미니즘이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명백히 성공을 이루었다고 보고, 여성들은 이제 다른 존재에 대한 전문가가 돼야 하며, 동물과 식물에 연민을 가지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 느끼고, 그들의 권리를 찾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첫째로, [푸근한 이웃집 아낙네 같은] 감상에 젓은 전통적 여성이미지를 고수한다. 항상 모두를 위해 준비된, 도움 주는 여성. 이를테면 거리의 개 혹은 야생 열매를 보살피는 역할에 충실하다든지 말이다. 둘째로, 이런 세계관이 몇몇 미국 대졸자의 성공담을 대변하는지 몰라도 - 평등에 관한 한 말과 실제가 따로 논다는 것을 이미 매일같이 경험하는, 이곳의 평균적인 독일 여성 방문객의 일상적 경험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모두가 평등을 원한다. 그러나 유치원은 오후 세 시면 문을 닫고, 세금 법은 가구주家口主가 한 명만 있는 가정에 유리하게 되어있고 경제의 주요 위치에서 남성들은 자기끼리 뭉치곤 한다. 그러나 독일에서 환경 문제는 남녀 불평등의 상황과는 달리 말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물론이요, 유기농 슈퍼에서 장을 보고, 에너지 전환 역시 후쿠시마 이후 적극 전환했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 보이스의 녹색당을 위한 그의 열정은 여기서는 모두가 지겹도록 많이 본 소재인 낡은 펠트에, 무당 앞 도큐멘타 예술가의 활에 불과하다. 모든 근대[역자 주: 명아줏과의 두해살이 풀 이름] 심는 이와 흙으로 만든 금괴와 붉은 무상인 역시 혁명적이라기보다는 향수에 젖어 보인다. 독일인들에게 흥미로운 것은 이보다는, 만족스럽다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높은 40%라는 여성 작가 참여도일 것이다. 서부 사하라에서 온 여성 활동가들, 인도에서 온 빛을 연주하는 여성 작가, 젊은 여성 미니멀리스트들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체 잊혀진 여성 아방가르드들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이 중 그 어떤 새로운 작업도 젠더 문제에서 정체하지 않는다: 일단 [남녀의] 참여도가 같아지고 남성과 여성이 같은 비율로 보이면, 그 영원하던 젠더 토론도 불필요해진다 (이는 최소한 이곳 독일의 남녀 비율을 정상으로 만들 좋은 동기가 되지 않겠는가?).
크리스토브-바카르기에프는 바로 이런 식으로, 그녀의 무심함을 통해 여성 문제를 무대에 올린다. 계획된 거라기보다는 우연히 이뤄진 상황이다. 그녀의 전략은 오히려 [여성주의에 더해] 동물과 식물의 위상을 높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생태, 자연, 그리고 예술이 서로 충돌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1997년 도큐멘타에 로즈마리 트로켈은 카스텐 횔러와 공동으로 "인간과 돼지를 위한 집"을 만들었다. 방문객은 그 안에서, 한쪽 면에서만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유리를 통해 놀고, 꿀꿀대고, 잠자는 돼지를 지켜볼 수 있었다. 마치 돼지가 어느 한 행복한-인생-TV-쇼에라도 나오는 듯 말이다.
현대 미술은 인간 세계 속 동물의 경우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도 이미 과거에 현명한 대답을 찾아왔다. 성공한 독일 작가인 로즈마리 트로켈Rosemarie Trockel은 지금 마드리드의 뮤지엄, 라이나 소피아Reina Sofia에 열리는 그녀의 회고전에, 말린 식물과 박제된 새를 추가하고 죽은 벌 한 마리를 그녀의 오래된 뜨개질 그림에서 드높인다. 그녀는 우리가 자연이라 부르는 것에 돌이킬 수 없이 새겨져 버린 문명화에 관해 얘기한다. 1997년 도큐멘타에 트로켈은 카스텐 횔러Casten Höller와 공동으로 "인간과 돼지를 위한 집"을 만들었다. 방문객은 그 안에서, 한쪽 면에서만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유리를 통해 놀고, 꿀꿀대고, 잠자는 돼지를 지켜볼 수 있었다. 마치 돼지가 어느 한 행복한-인생-TV-쇼에라도 나오는 듯 말이다. 이는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는 굉장히 인위적인 구조였다: 돼지가 이렇게 당신과 다를 게 없는데도, 정말 드실 겁니까?
크리스티나 부흐는 나비를 유혹할 정원을 준비했다. 이 도큐멘타는 더는 동물을 주제 삼으려 들지 않는다. 그들의 맘에 들려 함으로써 인간 관객이 쾌적한 양심을 갖길 바란다.
이 생태 예술의 원조인 로즈마리 트로켈은 이번 도큐멘타에서 아무래도 그녀의 동료 마크 디옹Mark Dion, 혹은 튜 그린포트Tue Greenfort처럼,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한 채 구석으로 밀려난 듯하다. 중심에는 이 스승의 자리에 크리스토프 바카이에프의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너무나도 착실히 재현하는, 그녀의 제자 중 하나가 자리한다: 크리스티나 부흐Kristina Buch는 나비를 유혹할 정원을 준비했다. 이 도큐멘타는 동물을 더는 주제 삼으려 들지 않는다. 그들의 맘에 들려 함으로써 인간 관객이 쾌적한 양심을 갖길 바란다.
세상은 온전하다. 오직 이곳, 카셀에서만 말이다. 마치 휴가지 별장 카탈로그에서 튀어나온 거 같은 천연 목재로 된 파빌리온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은 동화책에서처럼, 아우에 공원의 꺽어지는 각도를 따라 걸으며 도시화로부터 계속해서 멀어지는 듯하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더 이상 산업형 인간으로 보이지 않고 원형적 존재, 스스로 선 존재, 그리고 창조물로 느껴진다. 이 로맨틱한 환상이 현재와 또 현재의 문화와 많은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미화된 19세기 미국 풍경화에 가깝다.
이렇게나 자유로우시다는 자연을 그의 오랜 경쟁자가 방해한다: 예술이 말이다. 그러니까 카셀에서는 제멋대로 자란 덤불, 자연 대신 예술이 길들여진다. 이 과정이 어떤지는 아우에 공원 뒤에서 피아 윅Pierre Huyghe이 보여준다. 그는 쐐기풀과 잡초를, 또 그럼에도 예술가의 영향력은 허용된다는 듯, 각각 다리 한쪽씩을 분홍색으로 칠한 두 마리의 개를 보여준다. 그 사이에는 공원에 있던 오래된 조각이 놓여있다: 나체의 누운 조각이다. 그것의 머리통은 벌집에 박혀있다.
이제 카셀에서는 덤불, 자연 대신 예술이 길들여진다. 이는 양심의 가책을 덜기에 제격이다
유럽의 전통을 살펴보면 남성 누드는 인간 자체를, 여성 누드는 그와 달리 아름다운 예술을 상징한다. 즉, 윅의 여성 조각 두상에로의 끈적이 벌집 공격은 동시에, 예술 전체에 대한 공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꿀벌이 최고로 미학적 생산물과 사회적 체제를 만들 능력이 된다는 것을, 그러니까 예술가로서의 인간이 위대한 창조자 자연 앞에 서면 작아진다는 것을 정말 단순한 방식으로 보여주려 한다.
그런데 이런 소재는 새로운 게 아니다. 정말로 벌은 인간이 득을 취하면서도 길들일 수 없는 유일한 생물이다. 예전부터 벌은 효율성과 야생이라는 성질의 결합을 통해 야생과 시민 화의 중간 영역을 상징해 왔다. 이미1965년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한 퍼포먼스에서 생각의 흐름을 돕기 위해 머리에 꿀을 발랐고, 그 후 예술사가 페트라 랑에-베른트Petra Lange-Berndt가 보여 줄 수 있었듯, 올라프 니꼴라이Olaf Nicolai부터 마크 톰슨Mark Thompson까지, 예술가는 끊임없이 살아있는 곤충과도 "합작"해 왔다. 그러나 이번 도큐멘타에서는 우리의 이웃 여왕벌과 나비는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도큐멘타는1919년에 죽은 동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동물 삽화로 유명한 독일의 생물학자]의 놀라운 "자연의 예술형태Kunstform der Natur"에 축배를 든다. 그러나 여기 있는 누구도 지금 이 순간도 동물들이 멸종하고, 숲의 나무가 깡그리 벌목되고 있다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카셀에서 예전에는 누구나가 예술가였다. 오늘날에는 모든 동물과 모든 토마토가 그렇다. 정말 이게 이번 도큐멘타의 기억될, 중심을 꽤 뚫는 생각이라면, 다음 큐레이터에게는 근본으로 돌아가기back to the roots라는 단 한 가지 길만이 남는다: 2017년 전시는 첫 번 도큐멘타처럼 연방 정원 전시Bundesgartenschau[역자 주: 정원을 전시하는 전시, 연방 정원 전시의 부분 전시를 시작으로 카셀 도큐멘타는 생겨났다.]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예술은 사회 문제와 이별할 것이고, 전복을 지향 할 권리로부터 관객에게 새로운 생각의 공간, 자유의 공간을 마련해 줄 것이다.
예술이 정말 이런 짧은 생을 가진 것이라면, 그저 갤러리와 옥션에 팔리기 위해 있는 거라면, 예술 시장의 신 제프 쿤스Jeff Koons야말로 이런 시대의 징조를 일찍이 읽어낸 건지 모른다: 인터뷰에서 그가 말하길, 영원한 것은 예술이 아닌, 인간의 유전자라 한다. 즉, 중요한 것은 생물인 것이다. 그 외 나머지를 우리는 돈으로 환산해 놓는다.
예술을 어떤 정의에든 열려 있는 자유로운 것으로 보는 이는 먼 미래 예술의 멸망을 준비하는 셈이다. [1] 생태페미니즘은 생태학과 페미니즘을 결합한 형태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이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억압이 모두 남성우월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남성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에서 기인한 지배와 착취를 반성하고 수정 해 나가면서 차이의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차별이나 억압 없는 생명공동체를 실현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2] 독일어의 “entarten변질되다”이라는 단어는 나치 치하에 자주 쓰이면서, '순수 혈통이 더럽혀지다'라는 어감을 얻었습니다. 당시 1937년,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의 개관전 중 하나로 무엇이 “퇴폐 예술Entartete Kunst” 작품인지를 교육적 목적에서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1955년 첫 번째 도큐멘타는 이 '강제적으로 추방당한' 예술을 독일에 다시 소개한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스 쿤스트 매거진 아트Das Kunstmagazin Art 6월호는 도쿠멘타dOCUMENTA [13]의 참여작가 리스트가 공개되기도 전에 몇몇 작가를 미리 소개해 이슈가 되었는데요, 큐레이터 크리스토프-바카르기에프Christov-Bakargiev를 비롯, 7인의 작가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양혜규도 있었는데요, 한국에는 오히려 2009년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계기로 알려진 그는 독일 미술계에서 먼저 인정받은 작가입니다. 양혜규는 이번 카셀 전시에 <진입 – 탈-과거시제의 공학적 안무>라는 작품을 카셀 중앙역 구 역사에 설치했습니다. 오프닝 행사로 카셀 주립극장에서 일인극 <죽음에 이르는 병>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양혜규라는 작가와 그가 해오던 작품 전반을 소개하고 있어, 기본적인 정보 전달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가 2008년 함부르크 미대 교수로 초빙되었을 때, 저는 2년간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학생은 그를 자신의 작품같이 엄격하고 모든 일에 완벽을 기하면서도 열정적이고 시적인 감수성을 지닌 작가,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합니다. 다음 주에 카셀에 갈 계획인데요, 그의 작품을 직접 볼 때마다 느끼던 재미- 섬세하면서도 어딘가 남다른 세련된 감수성을 다시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설렙니다. 또, 이번 카셀 도쿠멘타에 대해 거의 모든 매체에서 칭찬을 마지않다가 최근 들어 하나 둘 비평의 글이 나오며 토론이 활발해지는 터라 직접 보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곧 도쿠멘타를 다녀와서 전하겠습니다.
양혜규가 그의 작품을 몽땅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돈도 없고 작품을 보관할 장소도 없는데 어쩌겠는가? 2004년, 그는 또다시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다. 런던 체류 지원금을 받게 된 당시 그는 거의 파산한 상태였다. 다양한 전시가 끝나고 여러 작품이 반송되고 있었으나, 양혜규에게 작품을 보관할 장소는 없었다. "다 갖다 버려야 했을 거예요, 런던 로렌스 오하나Lawrence O'Hana 갤러리에서의 전시가 없었더라면요.”라고 이 한국 작가는 덧붙인다. 양혜규는 일종의 문제 상황으로부터 작품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작품 전체를 다시 원래 상태로 포장하고, 네 개의 운송용 목재 팔레트 위에 쌓아 올리고 갤러리를 되려 창고로 쓴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슈타트에 있는 헤센 주립 박물관에 보관과 운송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개인전을 열었다. "창고 피스", 포장된 상태의 작품의 집적에 붙인 제목이다. 이는 이 순간부터 예술의 문제를 핵심부터 건드리는 개념적인 조각이 된다. 이 작업은 일종의 유목 생활을 하는 예술가가 봉착하는 문제들뿐 아니라 예술 작품의 조건을 노출시킨다. 포장된 짐 속의 그림과 조각들은 펼쳐져 보이고 해석될 때에만 예술인가? 많은 상상의 여지를 주기에 우리의 시선을 끄는 이 작품의 아우라가 더 큰 것은 아닐까?
어느 경우에든, 미술품 소장가 악셀 하우브록Axel Haubrok은 이 작품에 특히 감탄했고, <창고 피스>를 사들여, 몇 년 후 - 양혜규의 동의하에 - 작품을 풀어 전시했다. "저의 많은 초기 작품은 저 자신을 다시금 발견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생성되곤 했지요."우리가 그의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 위치한 건물 안쪽에 숨은 작업실을 펠트 슬리퍼를 신고 구경하는 동안 양혜규는 말한다. 그는 한 줄로 늘어선, 작업 재료가 빼곡하게 들어선 회색 사무실용 선반을 향해 고갯짓한다. "예전에는 늘, 저런 일렬로 늘어선 선반을 가지고 싶었죠. 저 혼자 조립할 수 있으니까요." 바로 이 선반을 활용하여 작가는 2002년 제 4회 마니페스타Manifesta를 위한 설치를 고안했다. 즉, 각 선반의 위치를 바꿔 그 본연의 용도가 제거되어 목적 없는 조각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아쉽게도 팔리지 않은 이 작품 역시 <창고 피스>에 포함되었다. 이제 양혜규는 선반 정도는 살 여건이 된다. 적어도 그가 다니엘 비른바움Daniel Birnbaum의 아르세날레 전시 «Fare Mondi»뿐 아니라 한국관 작가로서 참가했던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이후로, 1971년 서울 태생인 이 한국인은 그의 세대 중 가장 중요한 여성 작가에 속한다.
90년대 독어도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채, 작품 포트폴리오도 없이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Städelschule에 청강생으로 갔던 한국 배낭여행자로서 출발한 경력, 그곳에서 조우한, 젤을 바른 머리의 고집 센 조각가 덕만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경력. 서울미대에서 지극히 전통적인 미술 교육을 마친 양혜규는 독일에서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한번 작업에 접근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는 첫 유럽 여행에서 우연히 슈테델슐레에 가 보게 됐다.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한 남자가 양혜규에게 등을 돌리고 복사기 앞에 서 있었다. 게오르그 헤롤트Georg Herold였다. "그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서 한눈에 알아봤죠." 그는 대담하게도 이 조각가의 어깨를 톡톡 쳐 그의 학생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용감했던 적이 없었어요." 헤롤트가 어째서 승낙을 했는지, 그는 오늘날까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당장 집으로 날아가서는 짐을 쌌죠. 그러면서도 그가 저를 다시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걱정이 됐는지 몰라요."
결국, 헤롤트의 마이스터슐러로 졸업한 양혜규는 요즘 쏟아지는 전시 제안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멕시코 시티에서 지금 막 돌아왔는데 며칠 후면 말뫼로 가야 한다. 지금 그는 마치 살아있는 존재 같은 작품들이 빽빽이 거주 중인 작업실에 담배와 시차에 침잠하여 앉아 있다. 옷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전 옷걸이. 거기에 양혜규는 엄청난 액수의 달러 지폐가 인쇄된 회색빛의 싸구려 수건, 형광색 노끈, 직접 뜨개질한 덮개, 무지개색 먼지떨이 등, 천으로 된 물건들을 가볍게 툭툭 걸어 놓았다.이 입체 작업들은 마치 토템 같기도 하고 동시에 일종의 캐리커처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많은 여행에서 가져온 잡동사니로 구성된 작품이지만 그는 각 사물에 묘한 자기만의 생명력을 부여하고 낯설게 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선사한다. 나는 양혜규의 작품들은 그의 손톱에 거의 흔적만 남아 인상적인 윤곽을 만들어 내는 검정 매니큐어와 놀랍게도 유사한 면을 가졌다는 점을 발견한다. 첫눈에는 자극적이지만 다시 보면 무엇보다도 편안한 효과를 낸다는 면에서 말이다. 양혜규는 불완전한 미와 의미로부터 끊임없이 작품을 생산해낸다. 예를 들자면, 마치 색종이 접기 오브제를 제작하고 의도적으로 찌그러뜨림으로써 각각에 일종의 고유한 얼굴을 부여하듯이 말이다.
양혜규의 작업에 도입된 공업 생산된 일용품은 스스로 자기 방식대로 말하기 시작한다. 엽서 진열대, 맥주 상자, 선반… 공간 전체를 전면적으로 사용한 일련의 설치작을 구성하기 위해 그는 지난 몇 년간 일반 규격의 블라인드, 즉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생산된 물품을 마법과도 같이 시적인 미로 형태로 구축하여 전시장에 자유로이 건다. "실은 그저 비디오 설치를 위해 공간을 분리하려던 것이었죠." 양혜규는 말한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에 놀랐던 거죠. 빛이 블라인드에 스며들고 투과되어 얼마나 강렬해지는지를 보고서요. 그 사이로 직접 거닐다보면 공간으로부터 분리되면서도 동시에 연결되어 있기도 하지요. 얇은 금속판 사이로 거의 모든 것이 침투해 흐르니까요." 블라인드의 투과성을 강조하기 위해 양혜규는 다양한 광원 사이에 바람과 향 분사기를 설치했다.
카셀 중앙역에 설치된 양혜규의 작품, <진입:탈-과거시제의 공학적 안무>. "이번 작업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유토피아를 목표로 ‘더 많이, 더 빨리’를 추구했던 근대의 산업화가 실은 우리 모두 똑같이 경험했던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선진국에선 이미 지나간 일로 치부하는 이 근대화 프로젝트가 아직도 유효한 나라가 많음에 주목하고자 했다."라고 그는 말한다. 인용구 출처: http://view.heraldm.com/view.php?ud=20120612000816 사진: Thomas Lohnes/dapd
이런 설치가 한국 자유투쟁가 김산과 그의 약력, 혹은 프랑스 시인 커플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와 로베르 앙텔므Robert Antelme 혹은 독일 정치가 커플 게르트 바스티안Gert Bastian과 페트라 켈리Petra Kelly를 다루지만, 이는 명시적이지 않으며, 이러한 배경이 꼭 드러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양혜규는 설명하기보다는 느낌을 전하고 싶어한다. "제게는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관성들을 주관적으로 표현할 추상적인 형태를 찾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그는 말한다. 도쿠멘타 전시의 일환으로 소개되는 카셀 중앙역의 화물역사Güterbahnhof 설치를 위해서도 블라인드가 배달되었다. 이번에는 모터로 작동하는 블라인드를 사용하여 정해진 안무에 따라 오르고 내리고, 열리고 닫히는 등, 산업화에 대한 일종의 찬가를 부른다.
움직임의 모티브는-양혜규가 늘 그렇듯-사물에 대한 인식과 그 결과물인 작품이 서로를 필연적으로 촉발시키는 순서로 발생하였다. 펼치고 접을 수 있어 모델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평범한 빨래건조대를 재발견한 사진 연작 <접힐 수 있는것들의 체조>는 빨래건조대로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자세를 보여준다. 이는 마치 체조 연습을 관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양혜규가 자라왔다는, 당시 서울의 가난한 위성도시 인천에는 거의 모든 집에 빨래건조대가 세워져 있었다. 매일같이 다양한 구조를 연출하던 빨랫대가 "마치 깃발같아 보였"다고 양혜규는 말한다. "무언가가 살아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그런 깃발이요." 이 작가가 처음으로 빨래건조대를 사용한 것은 2006년, 직접 성사시킨 전시 «사동 30번지»에서이다. 이 전시는 일본 강점기에 지어졌으며 자신의 할머니가 생전에 살았던 폐가에서 열렸다. 양혜규는 빨래건조대에 꼭 맞게 제작된 덮개를, "이 집이 살아있었다는 상징"으로서 덧입혔다. 이후로 그는 수많은 빨래건조대에 옷을 입혔고, 뜨개질로 덮음으로써 무엇보다도 수작업과 공산품이 대조되는 그 모순적인 요소들로 인해 더욱 매력적인 조각을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사물의 윤곽만 남긴 형태를 통해 우리가 쉽게 지나치고 마는 형상들을 강조하는 동시에 천으로 감싸임으로 인해 사물들이 더 이상 펼쳐질 수 없는 상태를 제시한다.
요즘 들어 양혜규는 두루마리 휴지, 겹쳐놓은 일회용 컵들, "레토르트 적 양배추" 혹은 "독일 양송이" 통조림 등을 덮개로 감싼 <코지> 연작을 제작중이다. 오브제를 감싸 보호하는 동시에 낯설게 하는, 푹신한 손뜨개 덮개. "통조림은 음식을 사실상 영구히 보존하기 위한 것이죠. 평소의 쓰임과는 대조적으로요. 이런 작은 오브제에 다양한 시간성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에 저는 매력을 느낍니다", 양혜규의 말이다. 사물들이 그 자신을 드러내게 하는 것, 일상 속에서 점차 묻혀가는 각각의 속성에 일말의 관심을 일깨우는 것. "앞에 나서지 않고 묵묵히 우리를 위해 일하는" 이 모든 것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그의 할머니는 예전에 한 장롱을 다양한 음식이 들어있는 통조림으로 꽉 채워놓으셨다고 한다. "할머니와 우리 남매들에게 그건 보물이었어요."
그의 할머니는 당시 텔레비전과 피아노뿐만 아니라 문 손잡이 하나하나에 손뜨개한 옷을 입히셨다고 말하곤, 미소 짓는다. 그러고는 기자에게 그의 최근 구입품을 보여주었다. 양철 장난감같은 파란색의 튼튼한 아일렛 펀치다.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