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 좋게도 지난 4월 말, 베를린에 갈 기회가 생겨 오프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가 열리는 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의 입구는 많은 인파로 막히다시피 해 한참을 기다려 겨우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 일 층에는 독일 증권시장의 중심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하여 유럽 곳곳 오큐파이 캠프에서 초대된 수많은 활동가들이 큰 원으로 둘러앉아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60년대 말 어딘가에서 열리고 있는 학생운동 집회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미술관 내 예상치 못한 광경에,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많은 정치 활동가들의 들뜬 어조에 잠시 저도 눈이 반짝 뜨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정치 운동을 문맥에서 오려내 미술관이라는 장소에 던져 놓을 때, 피상적으로 형식만을 따오게 될 위험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과 함께, "현대" 미술 협회라면 이미 지겹도록 보아온 이런 형식이 아닌, 새로운 미술 언어를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깐의 설렘은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KW 계단을 오르며 민망하리 만치 단순한 전시 개념과 작품 수준은 저의 그러한 판단을 돌려놓지 못했습니다. 오프닝 다음날인 4월 27일 자 디 벨트Die Welt에 실린 비평적 논조의 이번 글을 보고 많은 공감이 가 쿤스트 슬래쉬에 소개합니다. 전시는 7월 1일까지 계속됩니다.
글 : 팀 아커만Tim Ackermann / 번역 : 정소현
대형 정치 농담: 베를린 비엔날레, 오큐파이를 통해 좋아요 버튼을 누르게 하다.
아, 오큐파이 운동이 있어 이 얼마나 좋은가! 이 움직임은 우리 삶을 정말 간편하게 만들었다. 복잡한 질문들도 이제 페이스북 좋아요 버튼 누르기 수준으로 답하면 된다. 베를린 비엔날레도 이에 앞장서고 있다. 비엔날레 큐레이터로 임명된 아르토 쥬미옙스키Artur Zmijewski는 이미 기자회견에서 그를 중심으로 오큐파이 활동가들을 억지스레 빙 둘러앉혀 놓고는, 토론의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긴다. 그들이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거기 앉은 모두가 손짓으로 그에 답해야 한다. 손을 귀 옆까지 들어 올려 좌우로 흔들면 동의한다는 뜻이다. 좋아요. 피아니스트가 연주 시작 전 화음을 집듯 손을 수평으로 해 앞으로 뻗으면 반대 의사를 표한다는 뜻이다. 싫어요. 질문이 던져진다. 당신들은 정말 근본적인 개혁을 원하는가? 그에 많은 오큐파이 활동가들이 손을 귀 높이로 들어 흔든다. 비엔날레 큐레이터도 함께 흔든다. 거기엔 뉴욕 현대 미술관 모마MoMA의 슈퍼 큐레이터이자 큐레이터 이사회 회원이며, 쥬미옙스키를 선발한 클라우스 비센바흐Klaus Biesenbach도 앉아 있다. 비센바흐의 표정은 굳어있다. 그는 약간은, 협상 중인 외계인 단체에 의도치 않게 공무원으로 뽑혀버린 미스터 스폭Mr. Spock처럼 보인다.

그러면 비엔날레 자체는? 좋아요? 아니면 싫어요? 이는 간단히 대답하기 어렵다. 오프닝을 한 후에도 이 쇼가 쥬미옙스키의 진담인지, 아니면 이 년이라는 준비기간을 투자한, 만전에 만전을 기한 고도의 농담이 통하게 되는 순간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제7회 베를린 비엔날레를 미술 전시로 분류하는 것은 좀 위험한 생각이다. 이곳에 예술적 작업은 몇 안 되며 그 작품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너무 빈약하다. 이들 작품을 두고 마치 오랜 지적知的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베를린 비엔날레를 도무지 미술 전시라 부를 수 있다면, 바로 이 전시가 명백히 예술 기관과 관련된 베를린의 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에서 보여진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유로 수긍하고 넘어가기에는 자꾸만 뭔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건물의 일 층은 예술이 아닌, 긴장 넘치는 삶이 점령하고 있다. 쥬미옙스키는 정치 행동가들에게 KW의 중심 홀을 자유로이 쓰도록 내 주었다. 이제 이 공간에는 각자의 규칙에 따라 제멋대로 쓸 수 있는 저항의 캠프가 구축된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폐해에 대한 정보들이 이곳에서는 "계급에 상관없이" 제시된다. 이 "계급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태도가 이곳에서는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그리고 연출적 관점에서의 가독성 따위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되고 말았다. "이는 너희의 미술관이 아니다. 이는 우리의 행동하는 공간이다."라고 누군가가 천장에 적어 놓았다. 몇몇 행동가들은 전시장을 어슬렁거린다. 의자로 빙 두른 원의 중심은 아직 비어있다. 스프레이와 묵은 천막 냄새가 난다. "나치 반대 오큐파이"라는 이름의 한 "열린 집단"의 포스터는 "억압, 전쟁,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를 통해 서로 뭉쳐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옆에는 끊임없이 분노하고, 자신의 의견을 삼키기만 하지는 않는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의 초상화가 그려진 데모용 푯말이 벽에 기대어져 있다.

오큐파이 활동가들이 보여주는 많은 것들이 서로 섞여든다. 그 중 안티-태도라는 막연한 이미지만이 관객의 인상에 남을 것이다. 포스터로 가득한 벽면에서 밀밭과 금빛 물결을 발견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저 단 한 번 터져 나오는 듯한 공감의 경험을 할 뿐이다. "식료품 투기는 배고픔과 죽음을 가져온다."라고 그 아래에 적혀 있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맞아, 식료품비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 이건 정말 막아야 해. 식료품값 투기꾼들은 위험한 인간들이다. 그에 비하면 은행원들은 거의 자원 봉사자처럼 보인다. 어찌 됐건 이는, 어느 정도 잘 쓰인 잡지 기사를 읽고도 얻을 법한 동정심으로 가볍게 찔리는 마음과는 또 다르다. 이 곡물 투기를 경고하는 포스터야말로 이번 비엔날레 최고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게 미술 영역에 들지 않는다는 건 보장할 수 있다. 건너편에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들은 예외 없이 실망스럽다.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뭔가 값어치 있는 내용이라면 쥬미옙스키의 오프닝을 여는 말 중에서 일 것이다: 그의 주장을 따르면, 예술은, 사회 혁신에 다시금 힘을 보태야 한다. 어찌 됐건 지금 그의 비엔날레는 예술이 작위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려 할 때, 얼마나 무능해 질 수 있는지를 우리 눈앞에 명백히 보여준다.
쥬미옙스키의 전시는 화약의 정치적인 폭발력을 보여준다: 전시된 예술 프로젝트들은 그저 생각의 파편 정도이거나 우리를 그럴듯해 보이는 토론으로 이끌 초기 과정에 머물러 있다. 이들 작품 중 몇몇 작품이 먼 미래 언제, 어디선가 그의 깊이를 완성해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2012년 초여름 베를린에서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몇년 전 폴란드의 도시 스뷔보진Świebodzin에 세계 최대 규모의 예수 상을 제작한 조각가 미로스와스 파타츠키Miroslaw Patecki의 작품이 어떤 형태로 전시되는지는 거의 상징적으로 보인다. 그는 이제 KW 일 층에 스티로폼 덩어리를 이리저리 조각해 그저 머리 하나만을 만들어 전시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폴란드의 지나친 종교적 태도의 상징으로써만 읽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뭐, 그게 결국엔 상징 이상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종교? 싫어요. 스티로폼-예수 작품 바로 옆자리에는 한 탁자 위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국가 팔레스티나의 도장을 작가 카리드 야라Khaled Jarrar로부터 받은 사람들의 사진이 놓여있다. 팔레스티나? 좋아요.
쥬미옙스키의 단순한 좋아요-/싫어요-놀이는 어쩌면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지도 모를 다음 전시실에서 계속된다: 이 층에는 네덜란드 예술가 요나스 슈탈Jonas Staal의 한 건축 설계가 놓여 있다 - 아일랜드 공화국 군대(IRA), 바스크의 Eta 혹은 인도의 무자헤딘(역자: 아랍어로, 성전에서 싸우는 전사를 뜻함)과 같이 유명하다고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는 테러집단의 깃발로 꾸며진 국회의사당 모형의 회의장이 놓여 있다. 쥬미스키와 슈탈은 오는 오월 초 베를린에서 "새-세계-정상회담"을 할 계획이다.
여기에 초대된 이들은 "최근 국제 테러단체로부터 납치된 경험이 있는 정치적이고 올바른 기획부서의 국회의원들"이다. - 뭐, KW의 경제적인 상황 탓에 비행기 비즈니스 클레스 석까지 지원받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테러리스트들이 보편적으로 적정 수준의 사회적 이해를 성취하는지에 대해 베를린에서 토론하게 될 것이라 한다. 결국에는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도 한번은 테러리스트 편을 들었다고, 비엔날레 전시 안내인은 슈탈의 국회 모형 앞에서 설명한다. 그렇지만 쥬미스키가 남아프리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IRA와 Eta 사이에 명예 회원으로 끼워 넣을 확률은 희박하다.

정말로 이 비엔날레의 많은 부분은 어찌할 바 모르는 선동이라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쥬미스키에게는 특히 베를린, 아울러 독일을 놓고 봤을 때 과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 외에는 별로 떠오르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그는 "45년도 베를린 학살"을 아마추어 배우가 슈프레 공원Spreepark에서 재현하게 했다. 이 공연을 통해 그는 또한 지나친 상징으로 과부하가 걸린 듯한, 루짜스 스로비예츠Lucasz Surowiec의 뭔가 부족한 프로젝트를 치켜세운다: 이 폴란드 인은 320그루의 자작나무Birken를 예전에 수용소가 있던 비르케나우Birkenau에서 가져와 베를린에 옮겨 심었다. 전시장의 꼭대기 층에는 천여 개의 자작나무 묘목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관객이 가져가, 독일 어딘가에 심을 수 있게 말이다. 홀로코스트Holocaust를 기리는 것을 게릴라 정원 프로젝트로: 이 비엔날레의 영향력은 잘해봐야 환경적인 측면에서 찾을 수 있는 듯하다.
at 2012/05/2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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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22:21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zero 2012/06/29 11:52 # 삭제 답글
kunstslash 2012/06/30 22:50 # 답글
2012/08/26 20:3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2012/08/28 00:5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