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 / 침묵하는 예술가 위에 괴물처럼 자라나는 작품

"작품이 말하게 놔두라!" 요즘 자주 들려오는 이 말은 작가의 침묵을 전제하는 동시에 많은 논쟁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예술가 내일리 바그라미안Nairy Baghramian은 뉴욕 예술과 정치를 위한 조각센터SculptureCenter와 더 뉴 스쿨The New School의 베라 리스트 센터Vera List Center가 공동 주체한 강연 시리즈 "조각의 주관적 역사"에서 최근 미술의 경향 중 하나로 보이는 작가와 작품의 주체-객체성의 전도를 미술사적 관점에서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바라봅니다.

저는 강연보다 이를 토대로 쓴 글을 먼저 접했습니다. 독일 미술 출판계에서 중요한 입지를 갖는, 그리고 학술적이고 난해한 문체로 대표되는 미술 잡지 텍스테 추어 쿤스트Texte zur Kunst 2012년 9월호에 실린 글이었습니다. 처음에 글만 봤을 때는 성급한 마무리를 짓는 결론 부가 아쉽다고 느꼈는데 강연 당시 비디오를 보고서는 이런 부분들을 잘 보충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 쟝-뤽 고다르Jean-Luc Godard의 영화 경멸Le mépris의 일부를 보여주고 이어지는 관객과의 질의응답에서 영화를 마지막에 보여준 이유를 설명합니다. (본문 아래에 비디오 첨부)


글 : 내일리 바그라미안Nairy Baghramian / 번역: 정소현

예술작품이 주체적인 존재로 다뤄진 건 도쿠멘타dOCUMENTA 13에서 만이 아니다. 작품을 자율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예술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품이 살아나는 경향은 예술가 주체의 침묵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오브제가 "스스로 말하는" 동안 예술가는 예술에 대한 논의에서 배제되거나 자발적으로 빠진다. 이에 대해 내일리 바그라미안Nairy Baghramian은 예술가의 목소리를 키울 것을, 예술가 자신의 작업을 바탕으로 예술의 기본에 대한 논의에 적극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주체에서 객체로 그리고 객체에서 주체로

지난 몇 년여간 작품의 위상은 자율적 존재라는 면에서만은 성장한 듯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예술작품이라는 표현이 쓰일 정도니 말이다. 이는 철학적 관점에서야 분명 흥미로운 소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개는 자율적으로 생각하는 예술작품이 본격적으로 스스로 행동하고 심지어는 큐레이터와의 긴밀한 대화에까지 끼어들게 한다. (그림에 기초한 작품을 물론 포함한) 객체는 자신과 다른 객체 사이의 연합과 친화성을 적극 배포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예술작품이 말하고 살아있으며 예술가는 물론 작품을 둘러싼 논쟁보다도 오래 살아남을 거라는 인상을 준다. 마치 주체를 가지게 된 작품이 괴물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에 관한 책임을 책임을 최신 논쟁에 떠넘기며 작품을 독립된 존재로 대하는 동안 큐레이터, 예술사가 그리고 비평가들은 이 괴물을 보살필 기회를 얻는다. 나는 이런 예술가들과 달리 예술가가 자기의 작업을 변호하는 역할 정도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로서 논쟁을 각오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예술가적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예술가는 예술과 그 가능성에 대한 아직 끝나지 않은 논의 내 기본적인 질문에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나 많은 예술가들이 담론에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흔쾌히 담론의 희생양인 체하는 요즘, 나는 이를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작품이 주체가 되는 경향은 예술가 주체의 계속되는 침묵을 바탕으로 자라난다. 예술가는 침묵함으로써 자신을 신비화시키는 오브제가 될 위험을 스스로 떠안는다. 다시 말해 그들은 스스로 무력화하며 침묵하는 상품이 될 준비가 되어있다. 큐레이터와 평론가 그리고 통제 아래의 미술 시장이 행동하는 존재로서 토론 영역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동안, 예술가에게는 "페티쉬 오브제"라는 이름표가 달리게 된다. 예술가라는 이름에 대한 유일한 항변이라고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이미 그 필연성을 잃은 영원성이라는 전통적 비전만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예술 내 토론의 가능성은 어디 있는 것일까?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의 작업, 무제(서 있기 위한 상자)(1961)
, 관객을 실물 크기의 세로로 세워진 직사각형의 나무 상자 안에 세움으로써 관객은 작업 일부가 되는 동시에 전시되는, 제도적인 문맥이 된다. 빈 상자는 관객 혹은 예술가와 같은 행동하는 주체가 없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오브제 자체만으로 무언가를 하는 게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지금 이 자리에서 끝없이 예술작품의 자율성, 혹은 생각하는 오브제로서의 예술작품에 대해 논의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미학적 경험을 둘러싼 공공 기관의 비평이나 기본적인 논의가 없었다는 듯이 예술작품이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자발적 경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 가치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1960년대를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예술작품을 생각하는 오브제로 다룬다는 면에서 같아 보일지 몰라도, 당시에 관객과 제도적, 사회적 요건이라는 관계를 전제했다는 면에서는 다르다. 예를 들어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의 작업 "무제(서 있기 위한 상자)"(1961)는 관객을 실물 크기의 세로로 세워진 직사각형의 나무 상자 안에 세움으로써 관객은 작업 일부가 되는 동시에 전시되는, 제도적인 문맥이 된다. 빈 상자는 관객 혹은 예술가와 같은 행동하는 주체가 없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오브제 자체만으로 무언가를 하는 게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작품이 스스로 생각한다는 믿음이 극단에 달해 작품이 주체가 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관객인 우리 자신까지도 마치 정신분열적으로 작품에 예속되게끔 위협하는데 이런 구조는 다름 아닌 예술작품 주변을 둘러싼 구조다. 그뿐만 아니라 비평가는 예술작품과 모든 것을 연관 지어 다루면 그만이라는, "작품은 스스로 말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콘셉트의 일부기도 하다"라는 태도를 보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술작품은 그저 반응하는 스크린이 된다.



시간 프레임

또 다른 예로 오스트리아 빈의 무목MUMOK에서 열린 전시,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erg. 60년대The Sixties"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아힘 호흐되르퍼Achim Hochdörfer가 올덴버그와의 긴밀한 공동작업으로 준비한 이 전시는 전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난 십 년간 제작된 작업에 예술 작품의 자율성을 녹여내고 다른 작품과 함께 전시하므로써, 각 작품은 비로소 그 의미를 획득한다. 이 전시는 역사로의 의식적 회귀를 통해 연결 고리를 만듦으로써 공간의 수사학과 작업의 배치에 관한 연구처럼 보인다. 이 전시에서 예술 작품은 세상만사에서 자유로운, 유령같이 떠다니는 존재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힘 호흐되르퍼가 만들어 낸 60년대 담론과의 역사적 그리고 사회-정치적인 연결고리는 그의 전시를 구성하는 형식적인 결단이 그 당시 시대에 바탕을 둔다는 것을 어느 정도 명백하게 함으로써 어째서 오늘날 우리가 당시의 담론에 몰두해야만 하는지를 확실히 한다. 이러한 전개를 철저히 추적하면 할수록 자발적인 예술작품이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은 더해만 간다. 예술은 항상 문맥과의 연관 속에서 읽혀야 한다. 예술작품은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그가 속한 문화 습관 형성에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예술작품과 관객의 만남은 예술이 사물을 사용하는 방식이 일상적인 사물로서의 습관적인 쓰임과는 의식적으로 차별을 뒀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로써 이러한 미학과 정치가 무언가를 변화 시킬 수 있음이 뚜렷해진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의 영역에서 빠져나와, 우리가 당연시하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많은 문화적 영향 아래 있었는지를 다시금 돌이켜보게 한다.

어째서 지금 이 화두인가

1992년 출간된 디디 후버만Didi-Huberman의 같은 제목의 책,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를 본다는 명제를 추적하는 동시에 60년대, 특히 미니멀 아트를 관찰하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이런 방향의 주장을 펴는 이들의 글이 그 자신의 예술적 생산물에 모순됨을 종종 보게 된다. 미니멀리즘에서 가장 흥미로운 논의는 이런 모순과 논쟁을 예술가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이런 담론-오브제-관계에서의 모순은 미니멀에 대한 태도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예술작품에 대한 수용 태도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오브제를 생성시킨다. 이에 대한 한 예로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에세이 "예술과 건축Art and Architcture"(1983)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밖에서 관찰한 게 아닌, 나 자신의 작업에서 예술에 대한 몇몇 질문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예술가는 아이디어와 원리 원칙을 당연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아이디어와 원칙은 작품이 만들어지기 전에 전부 표현될 수도, 아이디어에서 작품으로 버튼을 누르듯 간단히 전환 될 수도 없다.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 특히, 떠오르는 모든 아이디어와 영향을 미치는 속성을 끝까지 추적하고 표현해내는 것은 예술의 기본 조건이다. 이런 아이디어와 성질, 재료와 작품 형식은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낸다. 빨간색은 아마도 고유의 특정한 성질은 가진 듯하다. 하나의 작업은 이런 성질을 포함하고, 그리고 이는 관계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한다. 어쩌면 빨강이라는 고유의 성질 자체가 이 변화를 불러온 걸 수도, 반대로 애써 생각해낸 아이디어 혹은 고유 성질이 이 빨강을 불러들인 걸 수도 있다."

그의 말을 통해 당시 오브제 전략 또는 순수 제작 과정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제작과는 별개로 진행되었던 논의가 스스로에 대해 반추하고 논의에 참여하게 할 가능성을 마련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와 달리 1980년대에 행해진, 특히 회화를 둘러싼 논의에서 예술가, 화가들은 자신을 과도하게 주체화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작품과 예술가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다. 1990년대, 예술가가 60년대 개념미술과 깊은 연관을 가졌던 시대는 예술작품으로의 다시금 새롭게 무장한 비판적인 접근과 예술가 주체에 대한 회의주의를 보장하고 있었다. 예술가는 무엇보다도 정치, 사회적 존재로서, 논의를 만들고자 하는 문화 생산자로서 입을 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에 그들이 그들의 예술작품을 미술 시장에서 팔리는 예술작품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없었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에는 그들의 작품도 예술작품이라는 위상을 갖게 되었다.

요즘 들어 예술가들이 작품에 대단히 많은 인용을 넣는 모습이 눈에 띈다. 예술작품의 문맥을 강조하던 90년대와는 달리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인용 자체를 전시한다. 이는 종종 자동 역사화라는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인용이 각주라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 작품의 대변인이 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전복은 예술가가 그의 작품이 제삼자에 의해서야 분석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베일에 싸인 제작자라고 생각하는 동안, 전략적으로 계산된 참조가 해당 예술작품의 가치를 증대시킴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런 발전 과정은 또한 예술가가 항상 의견 개진에 주저하고 침묵 속에 안주할 이유가 되는 듯하다.

큐레이터와 비평가는 공동의 관심사에 가까운 기준으로 참조의 적정선을 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정은 비평가들이 더 잘 다루는 영역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비평가가 논리적으로 우월하게 되며 예술가가 큐레이터의 입맛에 맞춰 생산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 결과 모호한 과정 예술에 가까운, 불분명한 예술 오브제, 예를 들어 아르테 포베라를 닮은 예술 사조가 나타난다. 당시 아르테 포베라라는 미학 형식이 치열한 정치적 논의를 한 결과이자 공공 기관의 안정적인 상태에 반하는 저항적 선언으로써 가난한 재료를 선택한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예술 작품 생산을 보며 사람들은 이 "싼 재료"에 거의 동정심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예술작품은 그저 형식적인 구성으로만 보이며 권위 있는 아틀리에에서 탄생한 작품의 인기 있는 대변자로 존재하게 된다. 이는 공공 미술에서처럼 예술가가 아이디어를 제안해야 하는데다가 예술이 주문 제작이 되도록 큐레이터의 전체 콘셉트에 맞춰 예술이 일종의 "주문 제작 기술"이 되게 한다. 이런 예술가로서 접근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보다도 행위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문화적 과정이나 정치적 토론 없이도 작품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안드레아 프레이져Andrea Fraser의 비디오 무제(2003), 예술가는 미술품 수집가와의 섹스를 통해 자본주의의 효용 구조 속에서의 자기 상품화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이런 부류의 경험은 예술가들이 입을 다물수록 작품들은 더 자율적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예술 작품을 "스스로 말하게 두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예술가는 기껏해야 자기 작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려 할 때나 입을 연다. 한편으로 이는 작가와 작품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예술가가 미술품 수집가와의 섹스를 통해 자본주의의 효용 구조 속에서의 자기 상품화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안드레아 프레이져Andrea Fraser의 비디오 "무제"(2003)에서처럼 의도한 작업 방식으로서가 아닌,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감수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안드레아처럼 프레이져처럼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것에 무게를 두는, 퍼포먼스적 행위로 시스템 내부에 질문을 던진다거나 자신이 예술 작품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하는 예술가들은 늘 있었다. 이들은 주체로서의 예술가를 자기 작업에서 본질적 요소로 본다. 퍼포먼스적 과정은 관객과 작품이 전시되는 문맥 속에서 서로 만나는 순간에 생겨난다. 이런 식으로 생겨난 교환의 관계는 문화적 질문에 대한 기본적 태도를 바꾸고 다음 단계에서는 변증법을 통해 순수한 주체-객체 관계의 단계로부터 더 나아갈 역량을 갖고 있다.

타이밍Timing VS 위치하기Placing

객체-주체 관계를 다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공식기관의 업무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공공 기관들은 중요한 토론이 펼쳐지고 또한 지속될 것을 보장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재정 축소 때문에 먼 미래를 바라보고 설계한 공공기관의 구조를 별수 없이 망가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 때의 유행과 짧은 기간 조성된 미술관,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마니페스타, 도쿠멘타 등등의 초대형 전시의 누적은 이런 공공기관이 그들의 계약을 지속 못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예전에는 그런 이벤트 성격의 초대형 전시들이 몇 년여의 간격을 두고, 당대의 예술 흐름을 돌아보는 동시에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예측하는, 말하자면 한 시대를 갈무리하는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세계화로 이런 여러 전시를 동시에 방문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는 늘 똑같은 예술 작품으로 돌아오는 끝없는 데자뷰다. 공간적 특성은 타이밍으로 대체되었고 평행선적 발전은 예전에 논의한 다양한 과정 정의의 개념을 향해 간다. 이 세계화의 과정을 멈춰 세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어째서 이 시대의 대형전시와 그 영향에 대해 생각해야만 하는지를 말해준다: 예술 작품은 상위 개념으로 분류된 전시 아래 속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장소-특정성

공공 기관과 타이밍에 대한 이런 설명은 내게 장소 특정성이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며 놀랍게도 무목에서의 올덴버그의 작업으로 돌아오게 한다. 이제껏 그의 작품은 공공기관과 전시에서 항상 자율적 오브제로 보여졌다. 그런 탓에 그의 오브제에 대한 기대는 팝 아트에 맞춰졌다. 무목에서의 전시는 프레젠테이션과 작품선별을 통해 이 기대에 정확하게 대항할 수 있었다. 각각의 작업은 당시와의 시간적 공간적 연관 지음으로써 올덴버그 콘셉트의 퍼포먼스적 성격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의 작업을 팝 아트 영역에만 위치시키는 것은 그의 작업을 축소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집중된 큐레이터적 전력투구와 변화된 시선의 강조를 통해 이를테면 에바 헤세의 작업과의 연결이 훨씬 가까워지고 당시 올덴버그의 미니말 아트에 관한 논쟁 또한 팝 기준에 억지로 재단해 이룬 순수 성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집의 핵심Essence of the house

예술작품이라는 게 원래의 문맥에서 떼어내, 오로지 이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져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공공기관에 전시Präsentation됨으로써 무언가를 대표Repräsentation하는 형상으로 바뀐, 무엇보다도 자율적인 오브제였다고 칠 때, 오늘날 작품이 얼마만큼이나 그에 맞설만한 대항적 조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예술을 위한 장소, 이를테면 미술 오브제를 알리는 것과 연관된 (그리고 이런 식으로 예술의 이상에 이바지하는 기호학적 구조를 만들어냈던) 미술관이나 다른 공공 기관을 만들려는 욕구는 여행자들이 여행지에서 발견한 물건이 여행지의 특색을 드러낸다고 여겨 오브제를 보여주고자 하는 소망에서 생겨났다. 예술가들은 정확히 이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집을 제대로 인식하려 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들은 - 철학에서 집의 은유처럼 - 그들이 끊임없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 이와 연결된 전시 조건 또한 보게 되었다. 이를 통해 예술 작품 속에 쓰인 논의는 전시를 둘러싼 변수와 떼어놓을 수 없게 된다. 이는 작품을 장소 특정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된 이유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장소 특정성은 예술 작품의 자율성에서 나오는 게 아닌, 예술적 의도로 볼 수 있다. 장소 특정성은 되려 문맥에 기초한 규율과 자신에 관계된 가능성을 반성하는 데 이용될 수 있고, 상위에 놓인 경제, 정치, 사회 그리고 문화적 층위와 연관 지을 수 있다. 이는 공공기관과 그에 딸린 조건이라는 그물망 덕에 가능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특별한 관계를 적게 맺으려는 경향은 전시 기획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에도 늘고 있다. 이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지 못하는 큰 전시 때문이다. 이를 통해 예술작품은 너무도 가볍게 인기 많은, 이해하기 쉬운 전시 피스가 되어버린다. 이런 발전 과정은 장소 특정적 담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그리고 자기 반성적 공공기관적 개념이 손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솔직히 말하자면: 담론에 바탕을 둔 예술작품은 그 반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딘지도 모를 장소에 작품이 전시될 때 그저 순수한 전시 오브제로 보여지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경멸Le mépris

오늘날 주체와 객체의 인접함은 오히려 혼동과 잘못된 분류, 둘 다로 이끈다. 남는 것은 잊혀지고 여기저기로 보내지는 작품과 특색 없이 입 다문 벙어리 생산자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 직면할 때 과거에 대안적이고, 정말 긍정적으로 치솟는 예술 오브제와 예술 주체가 하나 되는 것을 염원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예로 (주체-객체-관계와 예술적 논의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 불렸다 하더라도) 앤디 워홀Andy Warhol 그리고 사회적 유토피아에 함께 관심을 가졌으며 그들의 미학적 노력 너머의 세상을 만들어 낸, 억압과 관습에 대항해 오늘날 우리의 정치적 현실에 이바지한 모든 예술가, 배우, 작가, 그리고 드랙퀸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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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3/02/18 14:4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1/22 15:2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kunstslash 2014/01/28 22:04 # 답글

    제가 감사합니다. 더 자주 올려야 하는데 요즘 너무 바빠서 새 글 번역을 거의 다 해 놓고도 정리할 시간이 없어 업뎃을 못 하고 있네요. 2월 중후반에 업뎃 할 수 있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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