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경계를 가진 세계 / 루시안 프러이트의 죽음에 바쳐

지난 2011년 6월 23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난 루시안 프로이트에 대해 너이에 쮜리혀 짜이퉁 2011년 7월 2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글 : 사무엘 헤어조크Samuel Herzog / 번역 : 정소현

우리 시대의 중요한  초상화가 루시안 프러이드의 죽음에 바쳐

영국 화가 루시안 프러이드는 우리 개개인에게 대면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그의 그림들은 구조적이기 보다는 하나의 점으로부터 자라난 것처럼 작용한다. 지난 수요일 그는 여든 여덟의 나이로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 하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알베르트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가 시도한 것 처럼 올가미를 두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끊임없이 펜으로 선을 두를 수도 있다. 혹은 붓으로 점 하나 하나를 찍어 그러한 점들로부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루시안 프로이트처럼 말이다. 그의 그림들은 항상 하나의 점으로부터 생겨난 것 같다- 마치 화가가 화폭 위에 찍은 첫 번째 점으로부터 하나의 새로운 현실을 연 것처럼. 그의 그림 앞에 서면 거의 자동적으로 실제와 실제 사이의 경계 지점을 찾게 된다. 구체적으로 찾지 못하더라도 이 점은 자석처럼 그려진 표면 위에서 눈의 움직임을 조종한다. 우리는 이 그림의 구석 구석을 탐험하려고 가장자리로 시선을 옮기려고 애쓰지만, 그 점은 우리의 시선을 계속해서 그림의 중앙으로 끌고 간다.

신체 부위로서의 머리

주로 그의 그림의 중앙 지점에 놓이게 되는 건 성적인 부위들이다. 목구멍을 그린 2002년의 자화상의 경우와 같이, 가끔은 그저 성적인 부위처럼 보이는 접혀진 살들이 중앙에 위치 하기도 한다. 보통의 인물 구상화의 중심에 놓이는 머리나 눈들이, 그의 그림에서는 보통 수족이나 복부보다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 다는 점 역시 그의 그림의 특징 중 하나 일 것이다. 그는 2002년의 전시 도록에 "나는 항상 머리부터 그리기 시작한다" 라고  썼다. "그리고 아주 신중하게 내 그림의 형상이 머리에 의해 강조되길 원치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는 신체 기관의 일부일 뿐이다."

1988년에 그려진 "벗은 여자Naked Woman"를 보자-작가가 주로 초상화, 그 중에서도 대부분은 벗고 있는 사람을 그린 전형적인 예이다. 여자가 방에 그림의 왼 편과 오른 편 경계를 넘어서도록 비스듬히 놓인 침대에 누워있는 게 역시 비스듬히 그려져 있다. 그녀는 등을 바치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하체는 정면으로 볼 수 있도록 틀어져 있다. 그녀는 어느 정도 긴장해 보인다 - 그녀 목의 핏줄은 두껍고 푸른 빛으로 부풀어 있고, 오른 손은 가볍게 주먹이 쥐어져 있으며 배에도 힘이 들어가 보인다. 그녀의 모든 신체 부위-얼굴, 가슴, 음부, 무릎, 발은 동일한 중요도 하에 그려져 있었다. 유화가 섬세하지 않고 오히려 성긴 붓 질로 표현되어 있었지만, 그의 그림의 형상 들은 구조적이지도 연출한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차라리 색으로부터 스스로 자라난 것 같은 느낌-아니면 하나의 점으로 부터 튀어 나온 것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붓 질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하나의 점으로부터 그림 하나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색에 대한 특별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 색 들은 캔버스를 건드리지도 않은 체로 한 덩이의 살이, 한 올의 머리카락이, 침대의 시트가 혹은 마룻바닥의 옹이 구멍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색으로부터 변신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의 변신을 봐줘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그림을 볼 때, 우리는 회화를 보는 게 아니라 그림을 보게 된다. 유화 물감과 질서로 이뤄진 실제가 아닌, 살과 피로 이루진, 나무와 천으로 이뤄진 것을 보게 된다. 이는 또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표면 아래에서만 작동하는 붓 질 하나하나가 살아있음을 뜻한다. 루시안 프로이트의 그림은 아직 물질로 보이려는 듯하다- 2005년 작, "발가벗은 숭배자를 보고 놀라는 화가The Painter Surprised by a Naked Admirer"에 그려진 작업실 벽처럼 추상적으로 형상화된 경우조차 이 색 들은 자발적이지 않다. 또한 마지막 색상의 껍질은 항상 신체의, 벽의, 가구 일부이다. 따라서, 프로이트 초상화는 구조 또는 그 어떤 시각적이거나 (실제처럼 보이려는) 일루전 같 목표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거기에는 스스로 자라난 세계, 균일 하게 그려진 몸, 거의 존재라고 불러야 할 만한 것들이 있다. 그들(신체)은 그들이 그들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들을 놀랍게 보이도록 하는 본질을 이룬다. 우리는 그들을 책처럼 읽을 수도 없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역사가 그렇듯이, 우리는 그 것을 그저 들여다 본다. 우리가 지하철을 같이 타고 가는 얼굴들을 보듯이-삶을 겪은 진짜 존재 들을 들여다 보듯이 말이다.

존재로서의 벽

그가 캔버스에 직접 그리기 전에 색을 테스트하기도 하는 그의 작업실의 벽은 루시안 프로이트의 그림에서 다시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두터운 색으로 발라진 벽 역시 우리는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로, 작업실의 얼굴로, 혹은 그의 작업의, 회화의 얼굴로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이 회화 들이 드러나길 원치 않는 대신, 실제이길 원한다는 상상을 지지한다. 그 작업실의 벽은 계속해서 색 들로 가득 찰 것이고, 계속해서 작업실 벽에 머물 것이다. 루시안 프러이트가 그의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모습의 사진이 많이 있다. 이 세계에 있는 것들은, 가구던, 수건이건, 화가 스스로도, 그리고 그의 붓 조차 모두 색색의 붓 자국들로 똑같이 건드려져 있다. 그리고 모든 여기에 있는 것들은 다시금 그림에 소재로 나타난다. 심지어는 그의 붓을 닦는 걸레까지도 말이다. -예를 들어 이미 1963년 작 "의자에 앉아있는 빨간 머리의 남자Red-Haired Man on a Chair" 라던가 1992년 작 "무릎을 세운 누드Nude with Leg Up (Leigh Bowery)"같은 경우 말이다.

데이빗 더슨David Dawson,"발가벗은 숭배자Naked Admirer, 2004. Photograph. © David Dawson, courtesy Hazlitt Holland-Hibbert, Londres: 프로이트의 "발가벗은 숭배자를 보고 놀라는 화가The Painter Surprised by a Naked Admirer"와 모델-그의 작업실에서 

루시안 프러이트의 세계에는 그림과 작업실, 그림 도구, 모델, 화가 자신의 몸과 상상력 들이 끊임없이 한데 섞여 들어간다. 그려진 것 같지 않고 점으로부터 자라난 것과 같은 그의 그림들은 아마도 이런 상황 속에서만 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관객들에게는 그의 작업이 생겨난 이런 조건들이 그가 이런 그림들로부터 그의 일반적인 해석을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음을, 그리고 그가 보이는 것을 보통의 언어처럼 단어-의미로 번역할 수 없음을 뜻할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머리 아프게 해석될 수도 있다. 심리적으로, 책장에 꽂힌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할아버지의 피셔-전집이 책장 아래로 떨어질 때 까지 말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 회화 들을 우리 앞에 선 대상으로 진지하게 대할 때,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몸으로 그 앞에 설 때, 그리고 그 회화 역시 그럴 때, 그리고 이 몸뚱아리를 가지고 그걸 느낄 때, 그걸로 우리는 이 그림의 결과, 즉, 우리가 그저 설정하는 하나의 경험을 피한다. 그의 회화들은 더 은밀한 것을, 즉, 그들의 존재와 우리의 존재가 섞기기를 요구한다.

물론 미술사 역시 하나의 역할을 한다. 카탈로그는 그들이 프로이트에 포커스에 맞춰야 하는 이 모든 보기들: 쿠베르트Courbet, 자댕Chardin, 콘스타블Constable,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그리고 그와,  폴 세잔도 Paul Cézanne. 작가 스스로도 자주  미술사의 큰 형상에 대해 생략하고, 모든 사색에  다가간다. 그렇다, 그는 자뎅이나 세잔의 그림에 관련되는 몇몇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그가 이 그림들에 들이는 시간이다.  그는 모든 예가 되는 그림들을 지워내고, 명명자가 영감을 받은 그 곳에서 표면에 지각을 형성하고 그 안에 깊이 새겨진 것을 가지고, 그 그림들을 개인적으로 만든다.

끝나지 않은 그림들

루시안 프로이트는 1922년 베를린에서 세상으로 나와 1933년 당시 그의 아내와 함께 영국으로 간다. 그는 런던의 골드스미스 컬리지를 다니고 21세의 나이에 이미 그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추상미술이 유행이었지만, 그는 처음부터 형상을 단단히 붙든다. 처음부터 그는 그의 친구, 가족등의 초상화, 무엇보다도 당시의 그의 주변을 그렸다. 지난 해 동안 그는 경매에서 잘 나가는 거물 중 하나였다. 2008년에는 소파 위의 풍만한 여성나체를 그린 "Benefits Supervisor Sleeping" (1995)를 23만 유로 이상의 가격에  팔았다. 바로 지난 해에는 파리의 퐁피두 센터가 "L'Atelier"라는 제목으로 그에게 큰 전시를 제안했다. -2011년 7월 20일에 작가는 런던에 있는 그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소문에 의하면 그가 많은 미완성의 그림들과 -또한 많은 사생아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아이들은 분명 혼자서 커 나갈 것이다- 그림들은 그렇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핑백

덧글

댓글 입력 영역